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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1946~ ), 「바다의 아코디언」 전문
노래라면 내가 부를 차례라도
너조차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리 절며 혼자 부안 격포로 돌 때
갈매기 울음으로 친다면 수수억 톤
파도 소릴 긁어대던 아코디언이
갯벌 위에 떨어져 있다.
파도는 몇 겁쯤 건반에 얹히더라도
지치거나 병들거나 늙는 법이 없어서
소리로 파이는 시간의 헛된 주름만 수시로
저의 生滅(생멸)을 거듭할 뿐.
접혔다 펼쳐지는 한순간이라면 이미
한생애의 내력일 것이니,
추억과 고집 중 어느 것으로
저 영원을 다 켜댈 수 있겠느냐.
(중략)
저물더라도 나머지의 음자리까지
천천히, 천천히 파도 소리가 씻어 내리니,
지워진 자취가 비로소 아득해지는
어스름 속으로
누군가 끝없이 아코디언을 펼치고 있다.
시인은 파도가 만든 갯벌의 <겹주름>을 <바다의 아코디언>이라고 명명한다.
바다의 아코디언은 셀 수없이 많은 주름과 거대한 크기를 갖고 있다. 주름 하
나를 한 생애로 본다면 몇 겁의 생애가 그 안에 있는 셈이다. 그 아코디언이
연주하는 음악은 <지치거나 병들거나 늙는 법>이 없는 파도처럼 끝없이 반복
되는 삶과 죽음이다. 파도는 그 주름을 수없이 지웠지만, 아코디언의 연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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