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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1945~ ) '영혼의 눈' 전문
이탈리아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 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냄새와 물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나무 껍질을 더욱
붉게 한다. 아찔하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저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소리 앞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이탈리아의 맹인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력을 완전히 잃었을 때 두려움과 절망의 눈물을 모두 쏟아버리는 데
필요한 시간은 꼭 한 시간이었다"고. 그러고는 눈물을 비워낸 그 자리에
영혼을 담을 수 있게 된 것일까. 그의 노래를 들으며 자꾸만 눈을 감게
되는 것도 그 영혼의 섬세한 빛을 따라가 보고 싶어서였을까.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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