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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1952~ ) '식탁이 밥을 차린다' 부분
식탁이 밥을 차린다
밥이 나를 먹는다
칫솔이 나를 양치질한다
거울이 나를 잡는다
그 순간 나는 극장이 되고
세미나 룸이 되고
흡혈귀의 키스가 되고
극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거울이 된다
캘빈 클라인이 나를 입고
니나리치가 나를 뿌린다
CNN이 나를 시청한다
타임즈가 나를 구독한다
신발이 나를 신는다
길이 나를 걸어간다
신용카드가 나를 소비하고
신용카드가 나를 분실 신고한다(후략)
'나'는 주어의 자리에서 쫓겨나 얼마나 많은 '목적어'와 본의 아닌 '보어'가 되어 살고 있는지.
주어의 자리에 앉아 계신 욕망이 나를 먹고, 입고, 신고, 읽고, 부린다. 거울 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수많은 욕망의 기호를 나는 소비함으로써 존재한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게 되리라. "나는 소비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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