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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림(1939~ ) '내 시는 詩(시)의 그림자뿐이네' 전문
詩(시)와 밤새 그 짓을 하고
지쳐서 허적허적 걸어나가는
새벽이 마냥 없는 나라로 가서
생각해보자 생각해보자
무슨 힘이 잉잉거리는 벌떼처럼
아침 꽃들을 찬란하게 하고
무엇이 꽃의 문을 활짝 열어제치는지
어째서 얼굴 붉은 길을 걸어
말도 아니고 풍경도 아니고
말도 지나고 풍경도 지나서
어떤 나무 아래 서 있는지
오랜 응시보다 오히려 바쁘게 일하다가 언뜻 돌아보는 풍경이 살아있는 시를 낳을 때가 있다. 벌떼가 잉잉거리듯, 아침 꽃들이 피어나듯, 저도 모르게 문을 열어젖히는 시. 김수영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랍을 닫을 때 딸깍 하고 소리를 내는 시. 또는 일을 하면서 보는 풍경인 동시에 풍경 속에서 일을 하는 시. 말도 풍경도 아닌, 그저 나무 한 그루가 되어 서 있는 시!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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