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1954~) ‘조공례 할머니의 찢긴 윗입술’ 전문
진도 지산면 인지리 사는 조공례 할머니는
소리에 미쳐 젊은 날 남편 수발 서운케 했더니만
어느날은 영영 소리를 못하게 하겠노라
큰 돌멩이 두 개로 윗입술을 남편 손수 짓찧어 놓았는디
그날 흘린 피가 꼭 매화꽃잎처럼 송이송이 서럽고 고왔는디
정이월 어느날 눈 속에 핀 조선 매화 한 그루
할머니 곁으로 살살 걸어와 입술의 굳은 딱지를 떼어주며
조선 매화 향기처럼 아름다운 조선 소리 한번 해보시오 했다더라
장롱 속에 숨겨둔 두 개의 돌멩이를 찾아와
이 돌 속에 스민 조선의 핏방울을 꼭 터뜨리시오 했다더라.
나는 아직 임방울이나 이화중선의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마음을 쥐었다 놓았다 하며
애간장을 녹이는 그 소리를 이해하려면 몇 굽이는 더 살아야 하나보다. 단지 비애나 한(恨)
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뜨거운“조선의 핏방울”은 명창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진도
사는 조공례 할머니의 저 찢긴 윗입술을 보라. / 나희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