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1939~ ) '몸詩(시)52-새가 되는 길' 부분
(생략)
나는 십 년이 넘게
도봉산 화계사 절 밑 마을에 살고 있다
새들과 말하고 싶지만
나는 십 년이 넘게
한 마디도 나누지 못했다
성자 거지 프란체스코가
새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살아 죽어서, 죽어서 살아!
새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살아 죽어서, 죽어서 살아!
뜨락의 작은 나무 하나도 나뭇가지도
한 마리 새를 평안히 앉힐 수 있는
몸으로,
열심히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
내 속에 새 한 마리 앉을 자리가 없다. 그러니 새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새들이 날아와 앉은 것은 프란체스코를 감싸고 있는 침묵의 모서리였을 것이다. 제 몸을 비
우면 만물은 자연히 흘러드는 법, 시인은 그 묘(妙)를 "살아 죽어서, 죽어서 살아!"로 표현
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길고 오랜 것은 자기를 살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 노자의 말도 그
이웃에 있다.
나희덕<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