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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1958~ ) '어머니의 그륵' 부분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중략)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실제로 말하고 있는 3000여개의 언어 가운데 문학을 가진 언어는 78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굳이 쓰일 필요없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입말을 근대적 문어체가 대신할 수 있을까. 학교나 사전을 통해 언어를 배우는 동안 잃어버린 또 하나의 언어를 시는 되찾고자 한다. '한 그릇의 물'보다는 '한 그륵의 물'이 지닌 삶의 체온을.
나희덕<시인>
공지 | isGranted() && $use_category_update" class="cate"> | 부활 - 친구야 너는 아니 (시:이해인) | 風文 | 2023.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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