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우리들이 나눠먹은 그 쌀밥은 달았다
이제 아랫목이 없는 보일러방
홑이불 밑으로 발 밀어 넣으면
아버지, 그때 쓰러진 밥그릇으로
말없이 누워 계신다
........................................
부산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9년 ‘시와 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부산민족작가회의 회원.
이 시가 우리에게 아득한 고전처럼 다가서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80년대에 ‘아버지 없는 사회’로 변환되면서, 아버지의 권위가 해체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가난과 힘든 근로 속에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며 아이들을 위해 일부러 ‘언제나 밥을 남겼고’ 그 남은 밥을 먹던 아이들의 ‘쌀밥이 달았다’는 것은 요즘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아버지의 깊고 지극한 자식 사랑이기도 하다. 밥그릇으로 오늘도 아버지가 ‘말없이 누워’ 있음은 다름 아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지극한 효심의 잔재이려니…. 李一基(시인∙‘문학예술’ 발행인)
지은이: 안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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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밥그릇 |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환한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우리들이 나눠먹은 그 쌀밥은 달았다 이제 아랫목이 없는 보일러방 홑이불 밑으로 발 밀어 넣으면 아버지, 그때 쓰러진 밥그릇으로 말없이 누워 계신다 ........................................ 부산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9년 ‘시와 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부산민족작가회의 회원. 이 시가 우리에게 아득한 고전처럼 다가서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80년대에 ‘아버지 없는 사회’로 변환되면서, 아버지의 권위가 해체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가난과 힘든 근로 속에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며 아이들을 위해 일부러 ‘언제나 밥을 남겼고’ 그 남은 밥을 먹던 아이들의 ‘쌀밥이 달았다’는 것은 요즘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아버지의 깊고 지극한 자식 사랑이기도 하다. 밥그릇으로 오늘도 아버지가 ‘말없이 누워’ 있음은 다름 아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지극한 효심의 잔재이려니…. 李一基(시인∙‘문학예술’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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