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같은 물 한 대야 떠다 놓고, 시린 발 담그고 얼굴 한 번 바라보고 눈물 하나 떨구고 물 한 방울 찍어 먹고 교, 교교교 울음 울어도 잎새에 이는 바람 한 점 부끄러워하지 않고
눈 감아도 해는 뜨니? 귀 막아도 새는 우니? 하시니, 어머니 나는 어머니, 어머님 무덤 지키는 푸른 제비꽃이나 될까요? 포르륵 포르륵 작은 파랑새나 될까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더 큰 罪나 짓고 살까요?
박재유
1992년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내가 母音이 되어」로 당선
십여 년 전 어느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끝말잇기 같은 교묘한 문장 연결과 청량한 이미지에 감탄했었다. 화법이나 이미지 전개가 개성적이어서 지켜볼 만한 신인이다 싶었는데, 그 후 더러 시는 발표했는지 시집은 출간했는지, 문단이라는 곳의 은근히 세속적인 질서에 질식해 버려 이 시가 그만 마지막 발표작이 돼 버렸는지는 글쎄, 알 길이 없다. 아무려나 문득 옛 기억이 떠올라 '신춘문예 당선시집'이라는 책에서 시를 찾아보았는데, 다시 읽어보니 내용은 은근히 난해(?)하다. '모음'이 무엇에 대한 은유인지 모르겠고, 무언가 자기 안의 아픔을 토로하는 듯한데 그 아픔이 어떤 종류의 아픔인지도 잘은 모르겠다. 그러나 독특한 화법과 이미지는 여전히 인상적이다. 심사평을 읽어본다. '활달하고 유연한 언어'라는 평은 썩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유년 화자의 천진스러운 화법'이라는 평은 이 시의 특징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어 공감이 된다. 어쨌거나 나로서는 그저 이렇게만 말할 수 있겠다. 맑은 슬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더 큰 罪나 짓고 살까요?' 기막히지 않은가? 조숙한 동심의 맑은 슬픔이 느껴지는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