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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의 마지막 괘가 화수미제(火水未濟)다. 결국 이 세상 어느 강물을 건너가도 끝은 없다는 이야기다. 도루묵이다. 무언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언가 다시 시작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끝없는 우주의 생명 순환이란 모름지기 끝이 없다는 게 본질이다. 무엇이 끝이고 무엇이 시작이란 말인가. 그저 그럴 뿐이다.
물은 끝없이 가라앉으려는 습성으로 인해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몸을 튼다. 불은 가없이 솟구치려는 습성으로 인해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몸부림친다. 물과 불이 만나는 방법은 불이 물 아래에서 물을 끓이는 그 시점이다. 그러나 그도 잠시, 곧 물은 증발하고 불은 사그라진다. 물, 불이 만나서 일순 다정해 보이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화수미제, 물, 불이 헤어지는 모습은 물 위에 불이 있을 때의 모습이다. 물은 끝없이 내려앉고 불은 끝없이 솟구치니 어디서 만나겠는가. 그러나, 그도 결국 어느 순간에 가면 불은 물로, 물은 불로 몸을 바꾸어 앉는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찰나다. 만나는 순간 또 다시 헤어짐이 움트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생명의 몸을 지니고 있는 한 아쉽지만 유한하다. 그 유한함 때문에, 헤어지는 아픔을 감수하기 싫어서 우리는 물과 불로 만나기를 꺼려하고 물과 물, 불과 불로 만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꿈일 뿐이다. 그래서는 도저히 사랑이 뜨거워지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끝없이 서로 다른 몸을 찾아 헤매는 물이고 불이다. 물은 불을 만나고 불은 물을 만나야 뜨거워지는 법이다. 그래서 사랑이 뜨겁다잖은가. 증발과 소진, 이것이 사랑의 실체다. ‘뼈’는 그래서 사랑의 결정이다. 사랑을 하려거든 물을 두려워하지도, 불을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한다. 물불 가리지 않아야 사랑이 꽃피는 거다.
이 시는 물과 불이 만나서 사랑을 하면 언젠가는 헤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아픔이 너무 아파서 차라리 물과 물, 불과 불로 만나서 헤어짐의 통증, 사랑의 종말이 가져다주는 허무를 줄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면은 오히려 오래 뜨거운 사랑의 열망이 숨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아리를 틀고, 도사리고 있는 저 마약 같은 중독성!
이 시를 시대상황에 비춰 보면 또 다른 이야기로 풀 수 있다. 1980년대의 시대적 상황은 이 시를 그저 연애시로 놓아두질 않기 때문이다. 어서 불의 힘으로 시비를 가리고 물처럼 평화로워지기를 바라는 열망이 녹아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오늘 이 시를 읽으며 가슴부터 먹먹해지는 것은 역시 이 시의 액면인 사랑의 열정과 아픔을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알았던 시지만 지금에 와서 새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무엇일까. 내 앞의 물이여, 내 앞의 불이여. 나는 지금 물인가, 불인가.
시인/안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