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악양
박남준
결국 남쪽 악양 방면으로 길을 꺾었다 하루 종일 해가 들었다 밥을 짓고 국 끓이며 어쩌다 생선 한 토막의 비린내를 구웠으나 밥상머리 맞은편 내 뼈를 발라 살점 얹어 줄 사람의 늘 비어 있던 자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따금 아직도 낯선 아랫마을 밤 개가 컹컹거리며 그 부재의 이유를 묻기도 했다 별들과 산마을의 불빛들은 결코 나뉠 수 없는 우주의 경계로 인해 밤마다 한 몸이 되고는 했다 부럽기도 했다 해가 바뀔수록 검던 머리 더욱 희끗거리고 희끗거리며 날리는 눈발을 봐도 점점 무심해졌다 겨울바람이 처마 끝을 풀썩 뒤흔들다 간다 아침이 드는 창을 비워 두는 것은 옛 버릇이나 무덤을 앞둔 여우들이 그러했듯이 나 또한 북쪽 그리운 창을 향해 머리를 눕히고 길고 먼 꿈길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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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
1957년 전남 법성포에서 태어났다. 전주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4년 <시인>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가 있다. 산문집으로는, 『쓸쓸한 날의 기행』, 『꽃이 진다 꽃이 핀다』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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