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남쪽 악양 방면으로 길을 꺾었다 하루 종일 해가 들었다 밥을 짓고 국 끓이며 어쩌다 생선 한 토막의 비린내를 구웠으나 밥상머리 맞은편 내 뼈를 발라 살점 얹어 줄 사람의 늘 비어 있던 자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따금 아직도 낯선 아랫마을 밤 개가 컹컹거리며 그 부재의 이유를 묻기도 했다 별들과 산마을의 불빛들은 결코 나뉠 수 없는 우주의 경계로 인해 밤마다 한 몸이 되고는 했다 부럽기도 했다 해가 바뀔수록 검던 머리 더욱 희끗거리고 희끗거리며 날리는 눈발을 봐도 점점 무심해졌다 겨울바람이 처마 끝을 풀썩 뒤흔들다 간다 아침이 드는 창을 비워 두는 것은 옛 버릇이나 무덤을 앞둔 여우들이 그러했듯이 나 또한 북쪽 그리운 창을 향해 머리를 눕히고 길고 먼 꿈길을 청한다
박남준
1957년 전남 법성포에서 태어났다. 전주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4년 <시인>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가 있다. 산문집으로는, 『쓸쓸한 날의 기행』, 『꽃이 진다 꽃이 핀다』등이 있다.
악양은 내게 천상의 낙원이었습니다. 열댓 살 무렵의 나는 거의 날마다 악양 주변에서 머물렀습니다. 허름하나마 웅지를 품은 무명소졸이 되어 화려한 동정호반의 악양루를 흘깃거렸습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기인이사들과 절세가인들이 모여 절륜의 무공과 인생을 은연중 뽐내고 있었습니다. 고요함을 짓누르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나는 한없이 가슴 졸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무렵의 나는 ‘무협지’라는 환상 속에 살았습니다. 그때 악양은 내가 숨쉴 수 있는 천상의 파라다이스였습니다. 오늘 다시 여기에서 ‘악양’을 만납니다. 하지만 30년을 격해 다다른 악양은 쓸쓸하고 고적합니다. 그리운 이의 부재로 인해 뼈가 시리는 곳입니다. 비록 “하루 종일 해가 들”고 “별들과 산마을의 불빛들은/ 결코 나뉠 수 없는 우주의 경계로 인해/ 밤마다 한 몸이 되고는” 하나, “밥상머리 맞은편/ 내 뼈를 발라 살점 얹어 줄 사람”은 “늘 비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밤마다 한 몸이 되는” 저 우주의 아름다운 본능적 결합을 앞에 두고서도 ‘나’는 “점점 무심해”집니다. 관조의 늪에 침잠합니다. 지금 여기의 이제 악양에서 내가 할 일은 “북쪽 그리운 창을 향해 머리를 눕히고/ 길고 먼 꿈길을 청”하는 것뿐인 것 같습니다. 그리움은, 외로움은 꿈길에서나 풀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열댓 살의 내게 악양은 ‘환상 속의 지향’이었으나, 30년이 지나 다달은 악양은 ‘부재의 외로운 현실’입니다. 사람 사는 곳에 사람은 들지 않고 “겨울바람이 처마 끝을 풀썩 뒤흔들다” 가는 쓸쓸한 지상입니다. 내 몸이든, 방바닥이든, 허공이든 손길로 쓱 문지르면 외로움만 두텁게 묻어날 듯싶습니다. 그런데도 이 곳은 왠지 편안합니다. 외로움과 그리움과 쓸쓸함 아래에는 무언지 모를 정감 같은 게 짙게 스며 있습니다. 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주술 같은 게 숨어 있습니다. <이사, 악양>, 몇 번을 가슴으로 읽어봅니다. 세상을 외로움으로 호흡하는 사이, 정갈한 그리움들이 배어듭니다. 내 심연에 또 하나의 환상이 자리하겠습니다. 천상(天上)의 지향을 지나, 지상(地上)에서의 부재의 현실을 넘어, 다가오는 날들에는 심상(心上)의 그리움으로 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