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계급적 관점에 충실한 시편이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연대인 7. 80 년대는 자본과 노동이 격렬하게 날 선 각으로 대립하며 서로를 적으로 규정한 시대였다. 냉대와 모멸의 대상에서 떨쳐 일어나 노동이 사회 변혁의 주체로 당당히 설 수 있었던 시대이기도 했다.
세계 최장 시간에 최저 임금이라는 인간 이하의 부당한 차별 대우를 일방적으로 받아왔던 노동자들이 태풍을 만난 바다의 성난 파도와 같이 그들의 적대 세력인 자본가 계급에 대해 자신들의 전 생을 걸고 온몸으로 투쟁했던 것이다. 즉, 즉자적 대중에서 대자적 민중으로 변모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개별 사업자 단위에서 벗어나 점차 전국적 수준으로 그 규모와 세력을 강화해 나갔고 이러한 투쟁에 힘입어 점차 열악한 노동 현실의 개선이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맞선 자본가 세력들의 반발도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은 부도덕한 군사 파쇼 정권의 노골적 지원 아래 무자비한 폭력으로 노동자들을 탄압해 갔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정책은 철저하게 도시 중심이었다. 이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서 이농민들이 양산되었다. 야반도주한 그들은 도시 주변에 기생하면서 산업 예비군으로 신분의 전락을 겪게 된다. 자본가 계급은 성장의 열매를 독점하고 사회적 분배에는 등한하였다. 또 그들은 노동자 임금 착취로 얻은 부의 증식을 기술에 투자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치부하는데 몰두하였다. 따라서 당시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은 어찌 보면 역설적으로 자본가 계급이 그 당위성을 부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노해의 시 <손무덤>은 각성한 노동자의 분노가 격정적으로 분출한 시라 할 수 있다. 시간의 풍화 작용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읽어 봐도 가슴이 서늘해지고 섬뜩한 느낌이 든다. 이 시에서 우리는 고상한 미학적 장치를 찾을 필요가 없다. 척박한 노동 현실 경험과 그 극복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발동기의 모터 소리처럼 박진감 있게 읽힌다.
우리의 노동 현실은 점차 개선과 극복이라는 자기 발전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아직도 열악과 구태의 구습을 완전히 탈각했다고 보기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으며 더욱이 한국에 진출한 동남 아시아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참혹한 노동 실태는 우리의 양식과 지성을 참담하게 만든다. 상품과 소비가 지배하는 시대, 공동체 의식은 골동품 취급을 받으며 희박해져 가고 있다. 지난 연대의 고난한 역정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시인 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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