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사에서
오탁번
고란사 뒤안 절벽 바위 틈에서 한사코 몸을 숨기는 눈썹만한 그대여 낙화암 푸른 전설 다 안다는 듯 천년 묵은 소나무는 굵은 뿌리를 바윗가에 드러내고 강물결 춤출 때마다 금빛 솔잎 따갑게 흔들리는데 눈씻고 보아야 겨우 눈에 띄었다가는 햇빛 비치면 다시 몸을 숨기는 고란초여 이제는 다 흘러가버린 천년 전의 사랑 아직도 못 잊겠다는 듯 그늘에 숨어서도 제 모습 부끄럽다 하네 비에 젖은 눈썹 훔치며 목숨과 바꾼 사랑 남 몰래 속삭이고 있네
- 출전: 시집 『1미터의 사랑』(시와시학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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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탁번 시인 약력
1943년 충북 제천 출생. 고려대 영문과 및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및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현대시> 동인 활동. 시집으로 『아침의 예언』(1973),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1985), 『생각나지 않는 꿈』(1991), 『겨울강』(1994), 『1미터의 사랑』(1999), 『벙어리장갑』(2002) 등이 있음. 이밖에 소설집과 평론집 다수. 제12회 한국문학작가상(1987), 동서문학상(1994), 정지용문학상(1997), 제35회 한국시인협회상(2002) 수상. 현재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 및 시 전문지 『시안(詩眼)』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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