寺院에서 만난 월남 여인
김태수
戰勝塔 아래 사원 뜰을 걸으면
땀이 배어 끈적한 정글복 안으로 讀經 소리가
또 배인다 베트콩의 포격으로 쪼개어진 枯木
얕은 그루터기에 앉아 아직 남아있는 화약 냄새를 느끼며
지나치는 승려들을 본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 노란 장삼자락 무겁게 끌며
어디 찢기인 마을 사람들의 가슴을 달래고 오는 길일까
우리들은 철모를 벗어 안았다
한 줄기 스코올이 지나려는지 이내 구름 끼이고
굵은 비 내려 本殿 처마 아래 몸을 옮겼다
안에는 월남 여인 두엇 합장한 채 엎드려 일어설 줄 모르고
검은 아오자이 사이로 빠져 나온 약하디 약한 발바닥
여인이여 누굴 위하여 기도하시는가
설움으로 들먹이는 어깨가 애처로웠다
일어나 향불을 지피고 다시 합장 한 후 돌아서며
놀란 듯 눈물을 훔치고 한동안 우리들을 쳐다보았다
검은 아오자이 긴 머리칼 사이 희디흰 얼굴 그리고 눈빛
얼른 우리들은 고개를 돌렸고 피던 담배를 황급히 비벼 껐지만
웬일일까 끼치는 소름이 방탄조끼
땀 절은 군복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직도 물이 빠지지 않아
질펀거리는 사원 붉은 황토 흙길을 쫒기듯 빠져 나왔지만
우리들에게 한이 깊었으리라 알 수 없는 월남 여인네들의
원망스런 눈빛은 부대로 돌아오는 트럭 속에서도
돌아와 누운 침대 위에서도
땀 절은 군복 상의 쪽에 오래 묻어 있었다.
- 출처: 연작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청사,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