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1~4) - 이해인
봄꽃들의 축제 - 이해인
21
주님, 오늘 하루도 감사했다고 당신께 아룁니다. 오늘 했던 일, 만났던 모든 사람, 마음속에 자리했던 기쁨, 슬픔, 근심, 불안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어 두려웠던 어둠의 순간들도 당신께 봉헌합니다. 기도를 바치기엔 늘 복잡하고 정성이 부족했던 저의 준비성 없는 잘못도 봉헌합니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 이 끝기도의 은혜로운 시간을 새롭게 감사드립니다.
사랑의 말은
1
시냇물에 잠긴 하얀 조약돌처럼 깨끗하고 단단하게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던 그 귀한 말. 사랑의 말을 막상 입으로 뱉고나면 왠지 쓸쓸하다. 처음의 고운 빛깔이 조금은 바랜 것 같은 아쉬움을 어쩌지 못해 공연히 후회도 해본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더 듣고 싶어 모든 이가 기다리고 애태우는 사랑의 말. 이 말은 가장 흔하고 귀하면서도 강한 힘을 지녔다.
2
어려서는 내게 꽃향기로 기억되던 사랑의 말들이 중년의 나이가 된 이제사 더욱 튼튼한 열매로 익어 평범하지만 눈부신 느낌이다. 비록 달콤한 향기는 사라졌어도 눈에 안 보이게 소리없이 익어 가는 나이 든 사랑의 말은 편안하구나. 어느 한 사람을 향해서 기울이고 싶던 말이 더 많은 이를 향해 열려 있는 여유로움을 고마워한다.
3
누군가를 처음으로 사랑하기 시작할 땐 차고 넘치도록 많은 말을 하지만, 연륜과 깊이를 더해 갈수록 말은 차츰 줄어들고 조금은 물러나서 고독을 즐길 줄도 아는 하나의 섬이 된다. 인간끼리의 사랑뿐 아니라 신과의 사랑도 마찬가지임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섬이 되더라도 가슴엔 늘상 출렁거리는 파도가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메마름과 무감각을 초연한 것이나 거룩한 것으로 착각하며 살게 될까 봐 두렵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마음의 가뭄을 경계해야 하리라.
4
아침엔 조금이나마 반가운 비. 참으로 오랜만에 맡아 보는 하늘물 냄새. 안팎으로 물이 귀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요즘이다. 메마른 세상에 물이 귀하니 사람들 마음 안에도 사랑의 물이 고이질 못하고 인정과 연민이 줄어드는 것인가? 연일 보도되는 사랑없음의 사건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때로 마음이 아닌 머리로만 살고 있는 것 같은 나 자신과 이웃을 발견하는 일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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