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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시간의 얼굴 1~5) - 이해인
1
오늘은 가을 숲의 빈 벤치에 앉아 새 소리를 들으며 흰 구름을 바라봅니다.
한여름의 뜨거운 불볕처럼 타올랐던 나의 마음을 서늘한 바람에 식히며 앉아 있을 수 있는
이 정갈한 시간들을 감사합니다.
2
대추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우리집 앞마당.
대추나무 꼭대기에서 몇 마리의 참새가 올리는 명랑한 아침기도.
바람이 불어와도 흩어지지 않는 새들의 고운 음색.
나도 그 소리에 맞추어 즐겁게 노래했습니다. 당신을 기억하며 -
3
한 포기의 난(蘭)을 정성껏 키우듯이 언제나 정성스런 눈길로 당신을 바라보면
그것이 곧 기도이지요? 물만 마시고도 꽃대와 잎새를 싱싱하게 피워 올리는
한 포기의 난과도 같이, 나 또 한 매일 매일 당신이 사랑의 분무기로 뿜어 주시는 물을,
생명의 물을 받아 마신다면 그것으로 넉넉하지요?
4
기도서 책갈피를 넘기다가 발견한 마른 분꽃 잎들. 작년에 끼워 둔 것이지만
아직도 선연한 빛깔의 붉고 노란 꽃잎들. 분꽃잎을 보면 잊었던 시어(時語)들이 생각납니다.
당신이 정답게 내 이름을 불렀던 시골집 앞마당, 그 추억의 꽃밭도 떠오릅니다.
5
급히 할 일도 접어두고 어디든지 여행을 떠나고 싶은 가을.
정든 집을 떠나 객지에서 바라보는 나의 모습, 당신의 모습, 이웃의 모습.
떠나서야 모두가 더 새롭고 아름답게 보일 것만 같은 그런 마음.
그러나 멀리 떠나지 않고서도 오늘을 더 알뜰히 사랑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공지 | isGranted() && $use_category_update" class="cate"> | 부활 - 친구야 너는 아니 (시:이해인) | 風文 | 2023.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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