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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 이해인 (11~15)
11
뜰에는 한 잎 두 잎 낙엽이 쌓이고 내 마음엔 한 잎 두 잎
詩가 쌓입니다. 가을이 내민 단풍빛의 편지지에 타서 익은
말들을 적지 않아도 당신이 나를 읽으시는 고요한 저녁,
내 영혼의 촉수 높여 빈 방을 밝힙니다.
12
나무가 미련없이 잎을 버리듯 더 자유스럽게, 더 홀가분하게
그리고 더 자연스럽게 살고 싶습니다. 하나의 높은 산에 이르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낮은 언덕도 넘어야 하고, 하나의
큰 바다에 이르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작은 강도 건너야 함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삶의 깊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하찮고
짜증스럽기조차 한 일상의 일들을 최선의
노력으로 견디어 내야 한다는 것을.
13
바람이 붑니다. 당신을 기억하는 내 고뇌의 분량만큼 보이지 않게 보이지 않게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14
숲 속에 앉아 해를 받고 떨어지느 나뭇잎들의 기도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한 나무에서 떨어지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
이승에 뿌리내린 삶의 나무에서 지는 잎처럼 하나씩 사람들이 떨어져 나갈 때
아무도 그의 혼이 태우는 마지막 기도를 들을 수 없어 안타까워해 본 적이 있습니까.
지는 잎처럼 그의 삶이 또한 잊혀져 갈 것을
"당연한 슬픔"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해 본 적이 있습니까.
15
은행잎이 지고 있어요. 노란 꽃비처럼, 나비처럼 춤을 추는 무도회.
이 순간을 마지막인 듯이 당신을 사랑한 나의 언어처럼 쏟아지는 빗소리
- 마지막으로 아껴 두었던 이별의 인사처럼 지금은 잎이 지고 있어요.
그토록 눈부시던 당신과 나의 황금빛 추억들이 울면서 웃으면서 떨어지고 있어요.
아프도록 찬란했던 당신과 나의 시간들이 또다시 사랑으로 지고 있어요.
공지 | isGranted() && $use_category_update" class="cate"> | 부활 - 친구야 너는 아니 (시:이해인) | 風文 | 2023.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