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저류는 폭발한다 - 오상순
무심한 목동의 손에 잡혀와
어미개의 젖을 빨며
강아진 양 강아지와 함께
유순히 자라나던
한 마리의 사자새끼 !
이와 같이 몇 세기의 세월이 무심히 흘러 가면
지나간 옛날의 맹수이었던 개의 운명과도 같이
사람의 손에 때묻고 길들어
그 본래의 존엄한 독립자존의 자유와 권리를
인간에 의탁하고 복종하고 충성을 다함으로써
또 하나의 노예의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을는지도 모르는
위기일발에 놓여진 사자 새끼의 위치
어찌 뜻하였으랴
여기에 하나의 기적과도 같은
무서운 속모를 운명의 저류는
번갯불이 흑운(黑雲)을 가르듯
풍랑에 번롱되는 운명의 표류를 가르고
화산 터지듯 폭발한
찬란한 혁명의 역사의 한 페이지
세기말의 숨막히는 고민과
세계의 마지막 심판날의 풍경을 방불케 하는
우뢰소리 지동(地動)치고
번갯불 요란히 흐르는
사나운 바람과 먹장같은 검은 구름
천지를 휩쓸고 뒤덮어 버릴 듯
엄청난 기상변조(氣象變調)의 심포니의 밤
폭풍우 직전의 심각한 정적
간간이 긴장한 깊은 정적 속에
밀물같이 달리는 검은 구름 사이로
버젖이 뚜렷한 달빛도 간혹 엿보여
이상히도 더 깊어가는 정적의 순간
오
들으라
저 뼈아프게 깊고 무겁고 그윽하고
한없이 침통하고 비장한
자식잃은 어미 사자의 울음소리를
무너질 듯 우렁찬 저 산울림소리
그리고 저 천백 가지 짐승의 떠는 소리
그렇다
이 순간이다
이 찰라다
마루청 밑
친절한 어미개 곁에
강아지 동무들과 깊이 잠들었던
안온하면서도 속모르게 불안한
잠은 깨고 꿈은 깨졌다.
그는
마루청 속에서 삽시에 몸을 마당으로 뛰어 나왔다.
그는
전신에 힘을 주고
네 다리에 힘을 힘껏 모았다.
만유인력의 결정체 그 축도인양......
나는
적어도
심산과 유곡과 사막과 고독과 암흑과
일체의 힘을 지배하고
백수(百獸)의 제왕인 대웅(大雄)의 왕자로다 ! 라는
숭고한 숨은 의식의 환발(喚發)과
그 위의의 정돈태세
두 번째의 그의 어미의 울음소리와 산울림 소리에
그의 전신은 절대한 힘의 긴장과 팽창으로
터질 듯
그의 눈동자는 우주중심의 촛점인양
절대자의 신비로운 알 수 없는 빛의 번갯불 쳤다.
세 번째의 비창장엄한 어미의 소리와
산울림소리의 그윽하고 우렁찬 율동과 여운속에
그는
홀연 몸을 번득이자
비호처럼 번개같이 바람같이 자취없이 사라졌다.
호리(毫厘)의 차(差)는 천리를 원격(遠隔)하나니
하마터면 무서운 회의와 미신에 빠져
본래의 자기자신을 잃어버리고 잊어버릴 뻔
아승아슬한 순간에
어미소리를 듣고 본래의 자기소리를 듣고
일초직인(一超直人) 태초본연에 돌아가
자기 어미를 찾고 자기 자신을 찾고
어미 품 속에 안겨
어미를 깨닫고 자기를 꺠우친
건곤일척의
비장 황홀한 혁명 정신의 한 페이지는
이리하여 써졌다.
우뢰소리 다시 한번 우렁차고
번갯불 다시 새롭게 찬란히 흐른 뒤에
바람은 자고
흑운은 걷히고
운권 청천(雲捲靑天)
하늘엔 무수한 성신이 영원한 질서의
정신을 상징하고
찬연히 빛나는 무한한 영광에 넘쳐
거창한 향연은 황홀한데
오랫만에 어미품에 안겨
사자새끼의 젖빠는 소리 그윽히 들리는 듯
기적과도 같이 북가사의한 운명의 저류의
하나의 풍경은 저와 같거니
운명의 저류는 인생과 자연을 통틀어
만유의 심장을 관통하여 흐르나니
각자 운명의 저류의 절대신비경의 소식
그 신성한 힘과 미와 비밀의 비약적 약동과 그 영원한 생명의 유동을 모르고 범하고 모독하고 사사물물(事事物物)의 형형색색 천차만별의 운명의 표류에만 독사같이 집착하고
표착(表着)하고 미혹하고 변전하여 개가 되고 도야지가 되고 소가 되고 말이 되고 여우가 되고 원숭이가 되고 독사로 타락 전전하는 인생이여 인류여 !
오
두렵지 아니한가
두렵지 아니한가
운명의 저류에 침잠하여
그 정체를 파악하고
그 진면목을 봄으로써
운명의 표류에 부침하지 말진저 !
멸망의 미몽과 악몽을 깨뜨리고
사자새끼의 정신을 배우라
불사신의 사자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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