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의 다섯 시 - 권행은
내가 아직 어린 나무였을 때
나는 초록기차를 타고 길을 떠났지
그때부터 내 생각은
끝없는 질문의 숲길
새벽을 매단 잎사귀들로 두 줄 평행선을 긋곤 했지
나는 싱그러운 잎사귀들의 발성을 받아먹었지
아직 휘어지지 않은 모국어의 풍경을 잎맥에 새기며
여러 해 동안
심장의 두근거림을 빗방울에 매달았지
감정의 가지들에 붉은 물이 들던 날
나는 예고 없이 또 다른 기차를 타고 떠나야 했지
따스한 온기에서 최대한 멀리,
모르는 외국의 플랫폼을 지나
설국의 슬픔을 실은 기차를 탔지
나의 음악은 주술에 걸린 층층나무가 되어
미처 떨구지 못한 낙엽의 길을 달렸지
가령 나이테에 어둠의 냄새가 녹아 든 저녁에는
공중에 별을 박듯 흔들리는 가지에 오래된 눈꽃의 몽유를 박았지
잎잎의 열쇠가 서랍을 여닫는 선로의 침목은 두 줄,
길들여지지 않은 질문의 색은 푸르러서
여전히 기적소리는 일생의 바깥으로 자라고
기차는 다섯 시에도 저 혼자 떠나지
여러 개의 서랍을 덜컹거리며
불면의 수피를 되돌려 감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