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무덤 - 김제욱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 가는 라디오의 재갈거리는 소리 - 김수영
나는,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는
노이즈.
지직거림의 전문가이지.
낡은 지도 한 장
구멍 난 양말 두 켤레
다 떨어진 노트
뒤축 없는 신발을 신고
전설의 라디오 무덤을 찾아
도시를 헤매지.
볼품없는 옷차림 허기진 몸
코일 회로 같은 노이즈를 따라가면
이름 없는 고물상,
라디오 무덤이 나오지.
구리선이 보여?
스피커…
레버…
게르마늄 다이오드…
배터리가 없어도
끊임없이
노이즈가 새어나오는 폐라디오.
다 부서져 형체를 알 수 없는 폐라디오.
라디오라 할 수 없는 라디오.
지지직… 지직… 지지직직… 지지직…
주파수를 맞추면
세상을 공평하게 만드는 노이즈가
금속탐지기처럼 끓어오르지.
폐라디오여 입을 열어라. 내 그 속에서
떨리는 노이즈의 진공관을 꺼내겠다. 도시의 끝
사그러져 가는 폐라디오.
납땜하는 거 안 지겨워?
지겨워.
그거 고쳐서 뭐 할 건데?
노이즈를 배부르게 먹고
밤의 플랫폼에서 시그널 음악을 듣지.
나는
낡은 지도 한 장
구멍 난 양말 두 켤레
다 떨어진 노트
뒤축 없는 신발을 신고
전설의 라디오 무덤을 찾아
도시를 헤매지.
오늘 내 라디오는
구닥다리 광석 라디오.
노이즈의 왕이지.
부러진 안테나가 보여?
여기는 지도에도 없는
재개발 철거지역.
도시의 내장이 드러난 곳.
나는 그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라디오를 발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