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우물 - 황정숙
발끝을 적시고 심장을 품은 물속에
가만히 두레박줄을 내린다
어떻게 닻줄처럼 팽팽한 길이
저 깊은 우물 속으로
이어져 있었을까
한 두레박 퍼올릴 때마다 푸르게
지나간 것들이 뒤뚱거리며 출렁거린다
퍼낼수록 더 맑아지는 샘,
깊은 허공을 만들며 드러난 길
물길이 머물던 돌 틈에 뿌리내린
이끼가 어둠을 빨아들이고 있다
낚싯대를 끌어올릴 때 물비늘 떨어지듯
박힌 돌들을
별로 품은 하늘에 동심원이 퍼진다
두레박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실로폰 소리를 낸다
화음에 맞춰 수면에 퍼져가던 물그림자
그 시간으로 이어진 긴 두레박줄을 흔든다
멱까지 차오른 내 안의 우물물,
날 여기까지 끌어올렸을 어둑살무늬 지도
퉁퉁 불어터진 눈으로 만져본다,
찰랑 허공으로 떨어질 두레박줄 팽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