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 최치언
그것 봐요, 내가 뭐라고 그랬어요 그 끈을 놓으라고 그랬죠
여자는 외투를 허공에 받아걸며 별들을 켠다
모르는 소리, 그 끈이라도 잡고 있으니까 이만큼이라도
버틴 거라고
남자는 세숫대야 속 부어오른 자신의 얼굴에 두 발을 담근다
여자는 검은 폐수가 흐르는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밥상을
차린다
고작 이만큼을 살려고 그 끈을 잡고 있어요
저와 애들 때문이라면 차라리 그 끈으로 콱 목을
매고 우리 식구 함께 죽어요
분을 찍어 바르던 여자가 분이 삭지 않는지 거울 속에서
남자를 째려본다
순간 남자가 폐수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여자의 놀란 립스틱이 눈꼬리까지 쭉 그어질 쯤 남자는
폐수 속에서 고래를 끌고 나온다, 이것 보라고 그 끈이라도 잡고
있으니까 용케 살아나올 수 있는 거라고
남자는 고래의 등 위에 올라타 작살을 높이 쳐든다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울부짖는다
그이가 드디어 미쳤어요, 더러운 고무 튜브를
타고 앉아 고래라고 그러지 않겠어요 칼, 식칼을 들었어요
이 집구석에 튜브가 터지면 큰일이에요
잘들 보라고,
고래의 등을 따서 고래등같은 집을 꺼내주……
부러진 장롱짝을 움켜잡고 여자와 남자가 필사적으로
폐수에 떠밀려간다
내가 뭐라고 그랬어 이 끈이라도 잡고 있으니까 죽어도 함께 죽는 거라고
죽으려면 제발 혼자 잘 가시라니까요
여자는 황급히 끈을 잘라버린다
여자의 늦은 밤 외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끊어진 끈을 발목에 질질 끌고 여자의 그림자가
골목을 빠져나가고 있다
누군가 별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