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진한 꽃밭 - 안도현
봉숭아꽃은
마디마디 봉숭아의 귀걸이,
봉숭아 귓속으로 들어가는 말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제일 먼저 알아들으려고 매달려 있다가
달량달량 먼저 소리를 만들어서는 귀속 내실로 들여보내고 말 것 같은,
마치 내 귀에 여름 내내 달려있는 당신의 말씀 같은,
귀걸이를 달고 봉숭아는
이 저녁 왜 화단에 서서 비를 맞을까
왜 빗소리를 받아 귓불에 차곡차곡 쟁여두려고 하는 것일까
서서 내리던 빗줄기는
왜 봉숭아 앞에 와서 얌전하게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일까
빗줄기는 왜 결절도 없이
귀걸이에서 튀어 오른 흙탕물을
빗방울의 혀로 자분자분 핥아내게 하는 것일까
이 미칠 것 같은 궁금증을 내려놓기 싫어
나는 저녁을 몸으로 받아들이네
봉숭아와 나 사이에,
다만 희미해서 좋은 당신과 나 사이에,
저녁의 제일 어여쁜 새끼들인 어스름을 데려와 밥을 먹이네
< 현대시학 > 2012,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