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가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 정원숙
밀레나, 나의 밀레나,
이곳의 바람엔 비릿한 아카시아 냄새가 배어 있다오.
빗방울 떨어지는 해변의 묘지에는
포도나무 일가一家 당신 종아리처럼 말라가고 있소.
이곳 수도원은 황혼의 물결 사붓사붓 풀어지고
수평선 끝자락 먼 고장의 발전소 불빛들,
당신께로 향하는 내 사랑의 발전기를 힘차게 돌리고 있다오.
그리하여 저 붉은 황혼은
새들이 당신의 나라로 실어나르는 내 피인 것이오.
뱃고동 울릴 때마다 맨발로 달려나가 선착장에 서면
내 눈동자 속에서 부서지며 사라지는 하얀 포말들.
이 편지지 위의 얼룩들은 내가 흘린 눈물이 아니라
당신께로 달려가는 긴 호흡들이라오.
막막한 눈동자들이라오.
이 순간에도 새들은 어느 식물의 팔을 베고 잠들어 있소?
이곳 사람들의 눈빛에 일렁이는 낯선 적의는
어느 바다에서 건져올린 그늘의 무게란 말이오?
이 비 그치면 바닷길 너그럽게 품을 펼쳐주고
구름을 거느린 빗방울 식솔들
먼 국경 너머로 잠행할 것이오.
당신이 수용소 바닥에서 웅크리고 잠든 지금,
내가 자정의 해변을 불침번 서고 있는 까닭은
당신의 열정으로 내 죽음의 시간을 끝없이 유보하기 때문이오.
물결이 물결을 밀고 오는 이 그리움의 시간
우리의 사랑은 황혼기를 맞아 클클거리고
지금 물의 결이 목선을 흔드는 것은
연약한 당신의 영혼을 잠재우기 위해
자장자장 흥얼거리는 바다의 음악들이오.
간혹 폭풍을 앞세워 불어오는
북쪽의 전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소.
우리가 함께 바라보았던 세계의 창들은 빛을 잃어가지만
이 빗줄기 뚫고 이 폭풍 건너 바다 속으로 걸어들어가면
우리의 전부였던 자유가 기필코 펼쳐질 것이오.
밀레나, 이제 새벽이 오면
수평선 위로 붉은 피를 뿜어대는 태양이 되고 싶소.
불멸로 다가가기 위해 나의 죽음도 당신의 죽음도
바다로 모두 흘려보낼 것이오.
치욕처럼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