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모스크바 편지 - 김성대
편지라는 행위만으로 우리는 눈 덮인 벌판에 서 있었다
겨울에 대한 끊임없는 여백
읽을 때마다 다른 곳에 있는 문장들
욕조에 물을 받듯이 그것을 옮겨 적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인지
기침과 침묵에 대해 쓰면 얼음이 되어 닿았다
묘지에서 돌아오는 저녁 입김에 대해 쓰면
얼음에 찍힌 새의 발자국이 되어 닿았다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인지
편지라는 행위만으로 우리는 긴 복도에 서 있었다
우리말은 다 잊은 것인지
우리는 여백을 헤매고 그 안에서 길을 잃었다
우리를 빠져나가는 공기에 대해 쓰면
창의 뒷면이 되어 닿았고
창에 입김을 불어도 글자가 쓰여지지 않았다
어디론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을 문장들
겨울에 대한 장문의 여백
여백을 고쳐 쓰면서도 우리의 문장은 한 줄도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