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행렬 - 유병록
관을 내려치는 못질처럼 비가 쏟아진다
구름의 시절은 땅속으로 질주해 사라진다
어쩌다 이 땅에 도착한 물방울은
이제 부서진 몸으로 딱딱한 세계의 한쪽 귀퉁이에서 길을 시작한다
흘러가는 것은 천천히 추락하는 것
굽이를 지나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는 물방울,
투두둑 뼈가 부서지고 요동치던 체온이 탈출한다
살점이 공중으로 튀어 오른다
수차례 정신을 잃고 혼절하는 물방울
누군가의 통증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주 오래된 오해,
구름조차 지상의 비명을 이해하지는 못할 것
더는 견고한 무엇도 남아 있지 않은데 무엇도 물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는데
누더기를 걸친 성자의 행렬처럼 흘러가는 물,
조금씩 더 남루해질 테고 지상에서 끝내 구름의 체온을 회복하지 못한 채 증발해 버리겠지만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동그라미의 일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