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속의 여자 - 강성남
1
화기를 가하는 건 늘 내부 쪽이다
잊으려 하면 할수록
불은 두꺼운 바닥을 투과하여
이마까지 달군다
속이 비치는 뚜껑
꽃망울처럼 부푼 목젖과
허파 밑으로 드나드는 바람이 보인다
방울토마토 같은
레몬 같은
타이레놀 같은
둥근 시간들이 그녀 안을 떠다닌다
정작 그녀 자신은
제 속을 볼 수 없어 바닥을 새까맣게 태울 때가 많다
2
바닥이 다층인 그녀
확 끓어올랐다 파르르 식어버리는 성깔이 아니다
급작스런 온도 변화에 민감하다
함부로 열을 가하는 것은 금물이다
서쪽 창으로 들어온 날 선 빛 한줄기
옆구리에 박힌다
빛 날에 긁힌 기억 속으로
두레박줄을 풀어 내린다
햇살과 바람으로 파도치던 시간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달콤한 시럽약 맛
쓰디쓴 가루약 맛
통증의 맛을 구분하는, 목구멍 씁쓸한 그녀
하얗게 불린 침묵을 넣고 뚜껑을 닫는다
열에 들뜬 이마 점점 달아오르고
뿌옇게 흐려진 안부, 끓기 시작한다
내장 뜨거운 짐승이 푸른 눈을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