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論 - 한영숙
퍼붓던 지난 겨울눈들이
하늘의 바닥이었다는 걸 안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
그 두꺼운 밑바닥을 다 쓸어내고 나면
뻥 뚫린 파란 구멍이 보였어
얼굴 깊이 묻고 엎드려 소리치면
빈 항아리 울음소리 같은 게 웅웅 귓전을 때렸어
하늘이 운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
누군가에게 속을 내보인다는 것
갈비뼈 한 대 뚝 떼어준 시린 옆구리 같았을.
새 발짝 하나 찍히지 않은 흰 세상이
참 아름답다고 누군가 들뜬 마음으로 환호를 질러댔어
또다시 눈이 내렸어
하늘 바닥은 어느새 콱 막혀있었어
도무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어
거리와 골목은 눈천지로 푹신거렸어
사람들도 슬슬 몸서리를 치기 시작했어
나도 어느 틈에 눈으로 뭉쳐진 돌멩이가 되어 있었어
자동차도 아파트도 거대한 흰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어
그들은 하늘의 두꺼운 바닥을 더욱더 견고하게 다지고
이제 저 속은 더욱더 깊어졌어
하늘을 삽질할 때마다 삽날에 돌멩이가 걸려 나왔어
나도 걸려 나오고
내 아는 누군가도 삽날에 이마가 찍혔어
이젠 쟁글쟁글한 하늘이라고,
그런데 그 두꺼운 바닥이 지금 새고 있어
점점 침몰하는 중이야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