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리에서 - 최춘희
비오는 날 미사리에 갔었지
거기에 너는 보이지 않고
강에는 돌자갈과 황토흙만 쌓여
긴 뱀처럼 띠를 두른 안개에
젖고 있었어, 밤새 꿈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소실점 향해
달려가던 너를 뒤쫓아 온 세상
미친듯이 헤매다녔지
네모난 어둠에 갇혀 떨고 있는
내 의식의 유리파편에 발 찔리며
건너뛸 수 없는 이쪽과 저쪽
좁혀지지 않는 수직과 수평의 거리
끼어 맞추다 그만 잠깨버렸어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물새떼
끼륵거리며 날아오르고,
마음의 붉은 뗏장 뿌리채 뽑혀
강물 따라 흔적도 없이 떠내려갔지
언제나 뒷모습만 보여주는 너
오늘은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고
부러진 시간의 관절들만 마구 자란
들풀이 되어 울고 있었어
강바깥으로 근거도 없이 떠돌던 소문
빈 콜라병처럼 밀어내며
더 이상 너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손도 자르고 팔도 자르고 다리도 잘라)
몸통만 남겨진 그리움
물수제비로 뜨고 있었어
머릿속의 불안한 막대그래프 지워버리고
생을 담보로 전신에 퍼져 있는,
한랭성 저기압 단칼에 베어내고 싶었지
바닥이 드러난 장세
아낌없이 손 털어버리고 나도
내부에 모든 것을 뭉뚱그려 넣은
강이 되어 흘러가고 싶었어
내 안에 고여 있는 세월의 저쪽
가로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