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甁) - 류인서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
그들은 늘 그의 오른쪽에 앉는다
아내 투정도 아이의 까르륵 웃음도
여름날 뻐꾸기 울음소리도 빗소리도
모두 그의 오른쪽 귓바퀴에 앉는다,
소리에 관한 한 세상은 그에게 한바퀴로만 가는 수레다
출구 없는 소리의 갱도
어둠의 내벽이,
그의 들리는 귀와 들리지 않는 귀 사이에
그의 비밀은 사실, 들리지 않는 귀 속에 숨어 있다
전기를 가둬두던 축전병처럼,
그의 왼쪽 귀는 몸에 묻어둔 소리저장고
길게 목을 뺀 말 모자를 눌러쓴 말 눈을 뚱그렇게 뜬 말
반짝반짝 사금의 말 진흙의 말 잎과 뿌리의 말,
세상 온갖 소리를 삼킨 말들이
말들의 그림자가 그의 병 속에 꼭꼭 쟁여져 있다
그것들의 응집된 에너지를 품고
그의 병은 돌종처럼 단단해져 간다
한순간, 고요한 폭발음!
소용돌이치며 팽창하는 소리의 우주가 병 속에,
그의 귓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