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박나무의 장례 - 김경윤
양지쪽보다는 그늘 쪽으로 마음이 기울면서부터
그녀를 오래 마음속에 두고 살았다
종갓집 며느리처럼 후덕한 잎사귀와 속 깊은
그늘을 가진 후박
아침저녁으로 그녀 곁을 지날 때마다
몇 번인가 말을 걸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끝내 침묵의 문을 열지는 못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무렵
나무 그늘 아래서 깔깔대던 여학생들처럼
그녀는 얼굴 가득 노란 웃음꽃을 터뜨렸다
나는 처음으로 나무들도 말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섰던 자리에 그늘이 사라지고
빛방석 같은 그루터기만 둥그렇게 남았다
그늘보다 빛을 쫓는 누군가가 그녀를 참수해버렸다
이 지상에서 그녀가 거느렸던 그늘과 정들었던 눈빛들
문신처럼 나이테로 새겨두고 순명하던 날,
그늘이 사라진 교정에서 나는 보았느니
쟁쟁한 햇살 아래서 키 작은 단풍나무가
눈물처럼 붉은 이파리 몇 잎 떨구고 서 있는 것을,
서녘 하늘에 노을빛 만장이 걸리고
어둠 속으로 구름의 장례객들이 떠나갈 즈음
유언처럼 개밥바라기 별빛이 오롯이 빛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