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악사의 0번째 기타줄 - 함기석
흉부가 기타로 변한 여자가 어둠 속에서
늙은 몸을 조율하고 있다
심장을 지나는
여섯 개의 팽팽한 핏줄들
눈을 감고 첫 번째 줄을 끊는다
금세 깨질 것만 같은 울림통에서
새들이 날아오르고
핏물이 저음으로 흐른다
기억은 동맥으로
망각은 정맥을 타고
심장 아래
시간의 텅 빈 자궁 속으로 흐른다
여자는 어둠을 안으로 삼키고
두 번째 줄을 끊는다
음의 물결 사이로
죽은 아이의 얼굴, 말들의 울음이 떠돌고
구름이 흘러나온다
내장이 훤히 비치는 구름
마지막 줄을 끊자
아이가 잠든 숲, 숯보다 어두운 숲의 지붕으로
연못이 떠오르고
여자의 몸이 묘비처럼
밤의 낮은음자리표 쪽으로 기운다
시간이 타버린 얼굴엔
검은 반점들이 추상문자로 남아 있고
핏물은 점점
소리 없는 음이 되어
생의 늑골 밑으로 어둡게 번져간다
신음 속에서 0번 줄을 퉁긴다
울림통 가장 밑바닥 샘에서 통을 깨는 음
침묵이 흘러나온다
아이가 기르던 은빛 물고기들이 나와
공중의 연못으로 헤엄쳐가고
시계들이 날개를 활짝 펴고 0시의 바깥세계로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