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견디기 힘든 - 황동규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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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벽 저편에서 중얼댄 말
나는 알아들었다
발 사이로 보이는 눈발
새벽 무렵이지만
날은 채 밝지 않았다
시계는 조금씩 가고 있다
거울 앞에서
그대는 몇 마디 말을 발음해 본다
나는 내가 아니다 발음해 본다
꿈을 견딘다는 건 힘든 일이다
꿈,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삶의 전부, 쌓아도 무너지고
쌓아도 무너지는 모래 위의 아침처럼
거기 있는 꿈
시간은 비정하다. 늦게 가 달라 해도 늦게 가주지 않는다. 꿈도 비정하다. 꿈이 싫다고 해도 꿈은 꾸어진다. 하느님도 비정하다. 꿈꾸게 하지 말아 달라 해도 꿈을 꾸게 하신다. 꿈을 꾸는 것은 쉬운 일이다. 꿈을 이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느님은 쉬운 일만 하시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신다.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시는 하느님, 자리를 내놓으소서. 자리를 옮겨주소서. <박찬일·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