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어느 날 - 정희수
흰구름이 흘러 가는 하늘은
몸살나게 푸르러져
가지마다 진홍의 열매 달았다
가슴의 피 같은 햇살
바람을 간직하듯이 괴어
잎 지는 가지에 숨이 걸린 듯
계절의 한 고비 계단에서
출렁이는 하늘에 손을 담그면
앨범 속에 있는 고향의 빛은
노을이 와도 아직 푸르렀다
구름 쓴 산이 다가와 서서
강 건너 가을을 불러와
너무 익어 떨어지는 과일 소리에
찌르레기도 놀라 울었다
산정을 지나가던 철새 떼들이
산바람에 묻혀 올라오는
아득한 산사의 종 소리에
시린 한숨을 저절로 흘렀다
신발 끄는 소리 밟고 오는
하늘 묻은 목탁 소리 울려 와
놀란 박새 한 마리
제 딱딱한 둥지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