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란(冬蘭)의 꽃 - 성락수
난초 잎 너스러진 가슴
하늘과 함께 누워 버린 지친 바다에서
파도 위에 밀리는 날개들 포물선 그렸네
훤칠한 키 낭창한 허리에
출렁이는 초록빛 꿈을 실어
이리 저리 구름이 피어나고
창세의 혼돈은 그 사이에 수런거리며
낮과 밤이 정해진 선명한
아침햇살 피어나면 그때에
그대 웃음 터트리어 갓 핀
열아홉 다 큰 화려한 여인
무르익은 어깨 너머 창 밖에는
겨울을 휘모는 대설원의 눈보라
산마다 흰 눈발 희뜩이고
동면(冬眠)을 잠재운 대지 위에는
하나같이 과묵한 때
이 방 안에 그대 호올로
차돌 옥분(玉盆) 높게 자리하여
살구빛깔 얼굴 환하게 웃는 보람
어여쁜 입가에 새어 나오는 분 냄새가
불괘지수 진한 공해의 뜨락에서
샘을 솟쳐 내어 한결 맑고 밝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