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의 내장이 비치다 - 신용목
시위대 빠져나간 거리에 톡, 유인물 한 장 발에 차인다
사방 꽉 찬 도시에
저리 환한 여백이라니!
그러나 저 여백은 무언가
들었다 빈 터
오래전, 내가 허문 집의 흔적이
봄볕을 받고 있다
눈부신 사각마다 기둥을 세워 일생을 살라라던 때가,
키질하듯
까만 활자를 허공에 털어낸다
저 바닥을 파내보면, 언젠가
마른 입에 물려주던 숟가락이, 마음보다 깊게 파던
놋그릇이
선지빛 녹을 달고 쏟아 질 것 같다
두고 온 세간들이
고스란히 소반에 차려져 오를 것만 같다
저 여백 속으로 세상의 모든 집들을
이사시키고 싶었던 시절,
자주 앓아 환하던 몸이 꼬불꼬불한 마음의 내장을 비
춰내던 것처럼, 사각으로 쏟아지는 봄은
환하다 햇살의 내장이 다 비친다
신용목 시집"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창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