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나무가 있는 집 - 허영숙
흙담이 있는 집 앞마당의 종려나무 한 그루
길 밖을 내려다본다
귀가를 서두르는 하루를 잡아끌다
갈라진 잎들이
가끔씩 바람의 옆구리를 찌른다
온기로 밥알이 익는 창문 밑으로
점점 더 깊게 뜸이 드는 저녁
종려나무집 마루에는
새벽에 잠시 앉았다간 퍼런 안개의 흔적과
총총 꽂히기 시작하는 저녁별과
패를 뜨는 노인의 노랫가락만 있다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문안을 하지 않아 길어진 야윈 목이
종려나무보다 더 길어서 슬프다
오늘은 손님이 올 거라는데
날마다 틀리는 패를 거머쥐고 그리움을 맞추는 시간
생의 저녁은 왜 쓸쓸함 쪽으로만 더 깊이 길을 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