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 정지용
장미 薔微 꽃처럼 곱게 피어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立春 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겨울 지난 석류 열매를 쪼개어
홍보석紅寶石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透明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金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해 시월 상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갸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고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銀실 은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新羅 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정지용 시집"지용 시선"[을유문화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