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굿에 들다 - 박라연
영취산
진달래, 화섬 같다
저 화력이면
한 집안의 어두운 내력쯤은
거뜬히 물어갈 기세다
세상의 야윈 종아리들을 만져본다
상처가 탄력인데
어두운 내력 죄다 줘버리면
무엇으로 세상을 건너지?
딴 몸의 지체까지 이고지고
산 순간들이
숨어 자라는 암(癌)꽃씨 되는지 너무
캄캄해서 오래오래 비워낸 시(詩)
선경을 불러내는지
복숭아꽃 살구꽃 도라지꽃 이 세상 꽃들
다 불러낼 때쯤
내장 속 암꽃마저 불러낼 때쯤
아! 나는 잠이 들고 잠든 몸에
꽃불 난다
불탄 자리에 걸린 희귀한 거울
거울이 피워낸 꽃섬
굿이 치는 최대의 선경이라면
화섬 16번지는
( )속 이름들로 등기
내주고 싶다
박라연 시집"우주 돌아가셨다"[랜덤아우스중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