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木瓜) 옹두리에도 사연이 -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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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아, 심청(沈淸)이 마냥 불쌍하기만 한 너로구나.
시인이 너의 이름을 부를 양이면 목이 멘다.
저기 모두 세기(世紀)의 백정(白丁)들,
도마 위에 오른 고기모양 너를 난도질하려는데
하늘은 왜 이다지도 무심만 하다더냐.
조국아, 거리엔 희망도 절망도 못하는
백성들이 나날이 환장해만 가고
너의 원수와 그 원수를 기르는 벗들은
너를 또다시 두 동강을 내려는데
너는 오직 생각하며 쓰러져 가는 갈대더냐.
원혼(寃魂)의 나라 조국아,
너를 이제까지 지켜온 것은 비명(非命)뿐이었지,
여기 또다시 너의 마지막 맥박인 듯
어리고 헐벗은 형제들만이 북(北)으로 발을 구르는데
먼저 간 넋을 풀어줄 노래 하나 없구나.
조국아! 심청(沈淸)이마냥 불쌍하기만 한
조국아!
註:이 시는 휴전협상(休戰協商)때 쓴 것임.
구상 시집"모과(木瓜) 옹두리에도 사연이"[현대문학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