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그리고 비망록 - 박해옥
비몽사몽 헤메이며 꿈꾼 것 같다
그해 느낌 좋던 봄 어느 날
운명 속으로 한사람 선들 들어서고
내 청춘의 뼈가 으스러지게 사랑했었다
삶과의 부딪침, 그 사랑의 방종
결코 만만한 세월은 아니었다
외발로 외줄을 타며 삶을 건넜고
절망을 오기로 버티던 시절
산다는 것은 형벌을 견디는 일이었다
운명은 괴력을 일삼았지만
다행히도 뒤끝은 없어서
행불행의 중간쯤에서
서늘히 앓던 지천명의 비애
침묵사이를 비집고
한껏 비만해진 고독이 들어선다
아, 낯선 이 적요
비우고 접어도 고여드는 섭한 마음
내 것과 비슷한 슬픔을 들고
쓸쓸한 누군가가 금방 지난 것 같은 축축한 뜨락
어둠을 삭혀낸 화목(花木)들은
눈부신 꽃등을 내 거는데
어리숙은 사람아
어쩌자고 슬픔을 내거는지
겨울은 갔지만
그 봄은 진즉에 죽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