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한 장 - 정주연
바다가 저만치 보이는 길에 이르고서야
비로소 가파른 곳에선 물살처럼
한 번쯤 허물어내려도 좋았다는 생각이 잠깐 지나간다
먼 길 어디에서 무너져 있던 집은
자력처럼 사람을 끄는 편안함이 있었다고 기억된다
벽이 버텨온 세상의 무게만큼 가벼워져서인가
알지 못한다 지나온 많은 집들 중에서
하필이면 나는 속 정겹게 내보이던
그 집의 사진을 골라든다
밑에서 아직도 제 모습 고집하고 있는 문틀이나 기와들
서있는 것들에 대해 일별도 없이 허물어져 내린
풍경 한 장, 그 안으로 자꾸만 가는 시린 마음의
서성이는 발끝은 때 놓친 봄꽃에 가 머문다
너도 수없이 일어서다 주저앉았겠다
뿌리깊은 슬픔이 꽃대 아득하도록
허공에 꽃잎 노오랗게 피워올렸겠다
물살이 거칠다 배가 사정없이 흔들린다 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