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혼자 속삭이면 무지개가 됩니다. 별.
또 한 번 속삭이면 골목길이 됩니다. 별.
그래서 자꾸 속삭이면 구슬처럼 구릅니다. 별.
홀로 속삭이면 자꾸 구릅니다. 별.
구르고 굴러서 저 혼자 떠납니다. 별.
내가 여기까지 왔을 때.
내가 이만큼 왔을 때.
내가 아직 여기 남아 있는데도. 별.
저 혼자 떠납니다.
나를 여기 남기고 떠나기만 합니다. 별.
끝내 내 곁에는 별이 하나 없어도. 별.
저 하늘을 유영하는,
들개, 까마귀, 늑대, 사이공, 병따개, 레바논, 유키.
몰락한 내 사랑을 완성하기 위하여. 별.
혼자 속삭입니다. 별.
![](http://astronomy2009.kr/archive/blog/image/%EB%B3%84%EC%9D%80%EC%8B%9C%EB%A5%BC%EC%B0%BE%EC%95%84%EC%98%A8%EB%8B%A4/star_2.png)
가상이 현실 보다 더 현실적일 때가 있다. 플라네타리움도 바로 그런 것들 중 하나다. 천체투영기라고도 하는데, 밤하늘을 돔극장에서 재현하는 장치다. 이곳에서는 날씨가 좋지 않거나 눈이 내려도 별을 볼 수 있다. 별똥별도 원하는 만큼 떨어지게 할 수 있어서 소원도 맘껏 빌 수가 있다. 밤하늘을 빨리 돌려서 하루가 몇 분만에 지나가게 할 수도 있다. 별자리 주위에 그림을 보여줄 수도 있다. 브라질의 하늘도 볼 수 있다. 혼자 별을 속삭이는 시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보여준다. 가자! 플라네타리움으로!
![](http://www.astronomy2009.kr/archive/blog/image/%EB%B3%84%EC%9D%80%EC%8B%9C%EB%A5%BC%EC%B0%BE%EC%95%84%EC%98%A8%EB%8B%A4/star_1.png)
사실 나는 총총한 별의 하늘을 상상의 그림으로만 느낀다. 어떤 한가한 방문이나 여행을 설계하는 순간에도 밤의 도시나 자동차의 소음이 나의 동반자인 반면 하늘이나 구름, 별과 달의 모습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별들이 박힌 밤하늘을 보면 낯설다. 달빛도 낯설다. 때로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내 상상의 기념관에는 별이나 은하 등은 서정적인 방랑의 모습이 아닌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내 상상의 기록은 변형되지 않은 채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독백 같은 공상, 상상의 우주라는 또 하나의 여정과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독백을 통해 별과 대화한다. '별'이라고 혼자 소리 내어 불러 본다. 상상의 우주를 향한 여행을 설계한다. 도시의 불빛 아래서 밤의 은하계를 대신하는 여정에 오른다. 그 여정에서 나는 진짜 별들을 생각한다. 내게는 너무 멀고, 낯선 그런 실재의 별들. 그것들의 운행에 관한 하늘의 수식들을 생각한다. 대상이나 현상을 운행하는 신비한 힘의 관계 안에서 나와 내 낱말들이 꿈꾸는 대상들은 태어나고 몰락한다. 그래서 모든 추억의 이름으로 실재의 별들이 저 하늘에서 오늘도 낯선 그림으로 빛을 낸다.
박상순은… 1962년생. 1991년 <작가세계>로 등단.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Love Adagio> 등. 현대시동인상(1996), 현대문학상(2005)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