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罪) - 오세경
누가 책(冊)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고 했듯이
나는 죄(罪)만은
죄보다 罪로 쓰고 싶다
그가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고 한 것은
책장마다 꽉 들어차 있는
불온한 영혼들의 심중에 한 획을 긋고 싶은
그 절실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죄보다 罪가
더 섬뜩하고 더 죄스럽다
내가 罪라고 쓸 때,
冊 안의 그레고르 잠자와
冊 밖의 나는
저 놀람과 두려움과 슬픔으로
잠시 교통한다
罪,
벌레 같은 그 글자 하나가
내 우주의 경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