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꽃 - 고은
강물이라면
어느 구비 두런거리며 감돌아오느라고
강물 위 산이라면
그 산그림자라면
어느 마루 넘어오느라고
어느 가녁 떠돌이였다가
고개 수그려 돌아오느라고
이다지도 늦게 와
몇 송이 꽃으로 피어 있는가
슬픔의 절반이 그리움이라면
더 슬퍼하여라
우르르 몰려와
여기저기
환히 깔깔대던
그 숨막히는 꽃시절 지나
다 흩날려 꽃비 내리던
어수선히 멍든 가슴 며칠이나 통으로 지나서
정녕 꽃으로는 벙어리일밖에 없는
이 적적한 시각에
이다지 뒤늦게 와
그렇다고 웃음도 아닌 서러운 울음도 아닌
맨 얼굴로 가만히 피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