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詩 - 김은우
후박나무의 넓은 잎사귀 사이로
저녁이면 집집마다의 지붕들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먼 하늘가로 새들이 몰려가고
보이는 것들 너머 마음으로 더듬는 길들
헛발 짚는 내 욕망이 절뚝이며 간다
모멸의 시간들
고통 쪽으로만 기울어지는 일상
눈물빛으로 반짝이는 예감들 앞에서
누가 감히 예지를 말할 수 있는가
원하는 것을 다 잡을 수 없다 해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겠다
밀려왔다 가버린 크고 작은 기회들
멈칫멈칫 머뭇거리다 하나 둘 흘러 보내고
새삼 작은 것들 앞에서 겸허해지는
외로움도 넉넉해져 굳이 시가 되는
고단한 발걸음들 집으로 향하는
인사치레로 묻는 안부처럼 무심히
가슴을 치며 맨살로 오는 저녁 무렵
멀리 사라져가는 것들의 기억으로
서서히 어둠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