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수도원 - 이진명
내 산책의 끝에는 복자수도원이 있다
복자수도원은 길에서 조금 비켜 서 있다
붉은 벽돌집이다
그 벽돌빛이 바랬고
창문들의 창살에 칠한 흰빛도 여위었다
한낮에도 그 창문 열리지 않고
그이들 중 한 사람도 마당에 나와 서성인 것 본 적 없다
둥그스름하게 올린 지붕 위에는 드문드문 잡풀이 자라 흔들렸고
지붕 밑으로 비둘기집이 기울었다
잠깐이라도 열린 것 본 적 없는 높다란 대문 돌기둥에는
순교복자수도회수도원(殉敎福者修道會修道院)이라 새겨진 글씨 흐릿했다
그이들은 그이들끼리 모여 산다 한다
저녁 어스름 때면 모두
성의(聖衣)자락을 끌며 긴 복도를 나란히 지나간다고 한다
비스듬히 올라간 담 끄트머리에는 녹슨 외짝문이 있는데
삐긋이 열려 있기도 했다
숨죽여 들여다보면
크낙한 목련나무가 복자수도원, 그 온몸을 다 가렸다
내 산책의 끝에는 언제나 없는 복자수도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