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비늘 - 이외수
4.탈출 동기
“일종의 보상심리 때문이 아니었을까. 인탁이도 일학년 때는 동명이처럼 전교에서 키가 제일작은 아이였지. 언제나 주위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어.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차츰 주위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기 시작했지. 인탁이는 그 이유를 나이 때문이라고는 생가지 않았을 거야. 아마도 동명이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겠지.”
양계장에서 녀석의 귀를 물고 실신한 뒤로 양호실에서 이틀 동안 신열을 앓으며 누워 있을 때 누군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녀석은 양계장 사건 이후로 진달래실에서 민들레실로 방을 옮기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 대한 놀림과 꿀밤만은 중단하지 않았다.
“김따앙코옹.”
“꿀바암코옹.”
코옹 소리 끝에는 반드시 내 머리통으로 불똥이 한 개씩 떨어져 내렸다. 거룩하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나를 녀석의 매받이로 이 세상에 내려보내신 모양이었다. 이학년이 끝나갈 무렵쯤에는 머리통에 굳은살이 박혀서 어지간한 강도의 꿀밤에는 감각조차 느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녀석 때문에 몇 번이나 보육원을 탈출하고 싶었으나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다. 용기가 생겨 주지 않아서였다. 지구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나는 녀석 앞에서 고양이와 새앙쥐, 또는 살모사와 개구리의 관계로 남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이변이 일어났다. 녀석이 먼저 보육원을 탈출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보육사들은 평소 탈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개인상담이나 소양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완벽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도벽이나 오줌싸개나 성행위 등의 발각으로 극심한 수치감을 견딜 수 없는 입장이 되었을때, 자기가 좋아하는 보육사나 직원이 개인적인 사유로 보육원을 사직하게 되었을 때, 외부세계에 대한 동경심이 애드벌룬처럼 부풀어올라서 주야로 주 가슴을 설레게 할 때, 집단적으로 구타를 당하거나 따돌림을 받거나 놀림감이 되었을 때, 짜장면 배달원이나 당구장 종업원이나 오락실 점원 등이 존경의 대상으로 보여질 때, 모험심이나 영웅심이나 자만심이 합세해서 망상을 부추길 때, 원생들은 탈출을 꿈꾸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보육원에서 보름치 용돈이 지급되었던 어느 날이었다. 녀석은 야밤을 틈타 옆방으로 침입해 들어가 다른 아이의 호주머니를 털었고, 그 사실이 탄로나자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동시에 나는 통일행진곡의 한소절처럼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민족이 되었다. 녀석은 오래도록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나는 이제야 하나님의 진실로 거룩하고 은혜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문은숙 선생님이 나타나기 한 달 전에 일어났던 일이었다. 문은숙 선생님은 내가 삼학년이 되던 해의 여름방학 때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만 되면 보육원으로 출근해서 원생들에게 그림을 지도해 주던 자원봉사자였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신림동 어딘가에서 개인화실을 경영하는 화가 지망생으로 알려져 있었다. 마흔이었다. 언제나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하고 있었다. 자상하면서도 명랑한 성격이었다. 원생들의 기분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문은숙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는 원생은 아무도 없었다.
“선생님이 어떤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고 했었지요.”
“남을 놀리는 사람이요.”
“선생님은 앞으로 김동명이를 김땅콩이라고 부르는 사람과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겠어요.”
문은숙 선생님이 그렇게 선포한 다음부터 나를 김땅콩이라고 부르는 원생이 모조리 자취를 감추어 버렸을 정도였다. 왜 문은숙 선생님은 녀석이 보육원에서 사라져 버린 다음에야 나타났을까. 당연히 나는 문은숙 선생님을 열렬히 추종하는 광신도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기만 하면 먼저 달력부터 쳐다보았다. 토요일이 며칠이나 남았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김동명이는 누구 얼굴을 이렇게 드라큐라처럼 그려 놓았지.”
“강인탁이요.”
“강인탁이가 누구지.”
“보육원 진달래실에서 같이 살던 형이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지금 무언가를 먹으려는 순간 같은데.”
“제 계란을 훔쳐먹고 있어요.”
문은숙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라고 했을 때였다. 연고자가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 누나의 얼굴이나 자기 이모의 얼굴을 그렸고, 연고자가 없는 아이들은 대부분 영아원 보모의 얼굴이나 학교 선생님의 얼굴을 그렸다. 그러나 나는 강인탁의 얼굴을 그렸다. 내가 보기에도 흉물스러운 초상화였다. 망쳐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찢어 버리고 싶었다.
“이 그림 선생님이 가져도 괜찮겠니.”
문은숙 선생님이 그 초상화를 가지고 싶어했을 때도 나는 도저히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게 용기를 주기 위해 그렇게 건성으로 한번 말해 보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선생님이 다니고 있는 대학원에다 다음주 수요일까지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데, 이 그림을 자료로 첨부 했으면 좋겠구나. 괜찮겠지.”
건성이 아닌 표정이었다. 나는 거절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드라큐라 같은 이빨을 드러내고 계란을 집어삼키려는 녀석의 악마적인 얼굴이 그렇게 존엄한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자못 의아스러울 뿐이었다.
“다른 그림을 그려 드리면 안 되나요.”
내가 물었다. 꽃밭 위로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그림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교내 미술실기대회에 출품해서 입선으로 상장까지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문은숙 선생님은 오로지 녀석의 악마적인 얼굴만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어떤 그림도 이보다 적합하지는 않을 거야.”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부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전신에 황홀감이 새벽놀처럼 스며들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강인탁이라는 형은 몇 학년이지. 선생님이 한번도 보지를 못한 것 같은데.”
문은숙 선생님이 물었다.
“오학년인데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 보육원에서 도망쳐 버렸어요.”
나는 홀가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천적은 내 곁에 없었다. 문은숙 선생님이 들고 있는 그림 속에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녀석이 사라져 버렸다고 내 체구가 김킹콩으로 변환되지는 않았다. 어떤 마녀가 성장을 억제시키는 마술이라도 걸어 놓은 것이나 아닐까. 내 체구는 일학년 때보다 별로 나아진 부분이 없었다. 보육원 담벼락에다 금을 그어 놓고 남몰래 키를 재보는 습관도 여전히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체구가 작다는 사실만 빼고 나면 이제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었다. 언제나 마음은 천국이었다. 학교에서도 천국이었고, 보육원에서도 천국이었다. 예배당에서도 천국이었고, 양계장에서도 천국이었다. 일 주일에 한 번씩은 어김없이 토요일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밤이면 자주 문은숙 선생님이 나를 양자로 데려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종이학을 천 마리만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대.”
보육원에는 종이학을 접는 아이들이 많았다. 친부모나 양부모를 만나고 싶은 소망 때문이었다. 정말로 소망이 이루어진 아이들도 더러 있다는 소문이었다. 나도 언제부터인가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다. 문은숙 선생님과 영원히 헤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날씨가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다. 나는 방학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깥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강인탁이가 돌아왔다고 누군가 복도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있었다. 황급히 창 밖을 내다보니 녀석이 정복 경찰관 두 명을 대동하고 원장실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원생들은 녀석에 관한 소문을 퍼뜨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처음에는 서커스단에 들어가서 곡예를 배웠다더라.”
“좋겠다.”
“날마다 채찍으로 얻어맞아서 살가죽이 찢어지고 피가 철철 흘렀다는데 도대체 좋기는 뭐가 좋으냐.”
“외발자전거 타는 법도 배웠을까.”
“모르지.”
소문에 의하면 녀석은 보육원을 탈출해서 어느 서커스단에 들어가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서커스단은 경영약화로 문을 닫아 버렸고, 단장은 심한 학대를 거듭하면서 녀석을 야간업소로 보내 돈을 빌어 오도록 종용했던 모양이었다.
“하루도 매를 맞지 않는 날이 없었다더라.”
“얼마나 매를 많이 맞았는지, 지금도 온 몸이 시커먼 멍투성이라더라.”
“정신도 약간 이상해졌다던데.”
“살이 찌면 곡예를 못한다고 밥도 하루에 한 끼씩밖에 주지 않았다는 거야.”
“간에 옴이 올라 긁지도 못하고 죽을 놈들.”
원생들에게 전통적으로 구전되는 욕설이었다. 가장 큰 저주가 담겨 있는 욕설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나 원생들의 입에서 욕설이 퍼부어지기도 전에 그 간에 옴이 올라 긁지도 못하고 죽을 놈들은 모조리 감옥으로 직행을 한 모양이었다. 녀석이 간신히 도망쳐 나와 파출소에 신고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신문에 보도까지 된 모양이었다. 감옥살이를 하면서 간에 옴이 올라 긁지도 못하고 죽는다면 얼마나 진저리가 쳐질까. 원생들은 모두 통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다시 녀석에게 시달림을 받게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나는 화장실 앞에서 녀석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는데, 녀석은 나를 괴롭힐 만한 기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모습이었다. 그 간에 옴이 올라 긁지도 못하고 죽을 놈들에게 얼마나 모진 학대를 받았는지 피골이 상접해 있는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기운도 정신도 모조리 상실해 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녀석은 이제 발톱이 빠져 버린 고양이였고, 이빨이 빠져 버린 살모사였다. 천적을 앞에 두고도 무기력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다음날 녀석은 신경정신과로 후송되었다. 모진 학대로 인한 대인기피증과 피해망상증 등의 정신장애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거룩하고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악마의 소굴에서 용감하게 탈출하여 당신의 품속으로 다시 돌아온 한 마리 어린 양은 지금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나이다.”
원장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새벽 예배시간이면 녀석을 위해 기도했다. 나는 갈등에 사로잡혀 있었다. 녀석이 회복되지 않기를 빌자니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녀석이 회복되기를 빌자니 앞으로 시달림을 받게 될 일이 걱정이었다.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아 들이신 걸로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녀석이 입원한 지 두 달이 경과하고 있었다. 면회를 다녀온 원장이 새벽 예배시간을 통해 녀석에 대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상태가 매우 호전 되어서 한 달 정도만 시일이 지나면 퇴원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녀석은 서커스단에서 모진 시달림을 받았기 때문에 회복되면 전보다 몇 배나 더 성격이 잔인하게 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한 달만 있으면 폭발하도록 장치 되어진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문은숙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 놓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문은숙 선생님이라면 틀림없이 나의 방패가 되어 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녀석의 퇴원보다 더 두려운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가 되었는데도 문은숙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았다. 밤중이 되었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일까. 누구에게 물어도 대답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원장에게도 물어보았고, 보육사들에게도 물어보았다. 그러나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시겠지.”
한결같이 그런 식의 대답들뿐이었다. 주소를 아는 사람도 없었고, 연고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몇 번 보육원을 몰래 빠져 나가 신림동 일대를 헤매어 보기도 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종이학을 접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그러나 천 마리가 넘었는데도 문은숙 선생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주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그 다음주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감당 할 수 없는 상실감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동안 여러분은 문은숙 선생님에 대해서 몹시 궁금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문은숙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유학중인 청년 화가와 지난달에 결혼을 하시게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자원봉사를 나오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성심으로 여러분을 보살펴 주신 문은숙 선생님의 행복을 축원하는 마음으로 다같이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녀석의 퇴원이 일 주일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을 때였다. 원장이 새벽 예배시간에 문은숙 선생님에 대한 소식을 알려 주었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들의 말에 의하면, 그런 일이 있을 때는 원생들의 마음에 동요가 생기는 것을 염려하여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다음에야 알려 주는 것이 상례라는 것이었다. 나는 절망감 때문에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할 지경이었다. 봄이었다. 보육원 담벼락 밑으로 개나리가 눈부시게 피어 있었다. 나는 다시 원인불명의 신열로 며칠 동안 양호실에 누워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탈출하고 싶은 충동만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5.거지냐 도둑이냐
나는 보육원을 탈출하면 신문배달원이나 껌팔이로 나설 계획이었다. 그러나 신문배달원은 확실한 거주와 신원이 보장되어야만 얻어낼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리고 껌팔이는 최소한 이천 원 정도의 사업자금이라도 확보하고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나에게는 여의치가 않았다. 신문배달원은 잘못하면 보육원을 탈출했다는 사실이 들통날 우려가 있었으며, 껌팔이는 사업자금이 턱도 없이 모자라는 실정이었다. 보육원을 탈출할 당시에는 호주머니 속에 보름치 용돈 오백 원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버스비로 백 원을 탕진하고 하루에 빵 한 개씩을 사 먹고 나니, 이틀 만에 호주머니 속에는 땡전 한푼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잠은 아무 교회로나 들어가 적당히 해결할 수가 있었다. 교회는 시내에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러나 끼니는 아무데서도 해결할 수가 없었다. 사흘째 되는 날부터 나는 물로 배를 채우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당혹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디로 갈까. 막막했다. 자동차가 가야 할 방향을 지시하는 화살표는 길목마다 그려져 있었지만,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지시하는 화살표는 어디에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허기진 배만 채울 수 있다면 차라리 불량배들의 마수에 걸려들어도 좋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날마다 하루 종일 정처없이 걷기만 했다. 나흘째가 되는 날은 허기로 길바닥에 쓰러질 지경이 되어 있었다. 먹을 건 사방에 널려 있었지만, 돈이 없으면 굶어죽더라도 내 입 속으로는 들어올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동물이 먹지 않으면 죽어 버린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나는 공포심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서울의 낯선 외곽지대에 당도해 있었다. 보육원과는 상당히 먼 거리였다. 하늘이 흐려 있었다. 바람도 불고 있었다. 바람 속에 비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나는 거지가 되어 돈을 구걸하느냐, 도둑이 되어 음식을 훔치느냐로 오래도록 고심하고 있었다. 거지보다는 도둑이 나을 것 같았다. 이름난 도둑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있어도 이름난 거지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도로변의 조그만 구멍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열 명의 포졸이 한 명의 도둑을 잡지 못한다는 속담이 어느 정도는 자신감을 부추기고 있었다. 사흘 굶어 도둑질하지 않을 놈 없다는 속담도 어느 정도는 죄책감을 덜어 주고 있었다. 배가 터지게 음식을 먹고 난 다음이라면 감옥을 간다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결행을 하려니 가슴이 뛰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꼬마야.”
등뒤에서 갑자기 굵직한 남자의 음성이 내 덜미를 움켜잡고 있었다. 심중을 들켜 버린 느낌이었다.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도망치지는 않았다. 도망을 치면 오히려 의심을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주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보니 휠체어를 탄 사내 하나가 바퀴를 굴리며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 말인가요.”
“다른 사람은 없지 않니.”
“왜 그러시는데요.”
두 다리가 절단된 마흔 살쯤의 사내였다. 절단된 두 다리 사이에 소주병이 끼워져 있었다. 뚜껑은 닫혀 있었지만 술은 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사내의 얼굴은 술에 검게 절어 있었다. 의복도 후줄그레한 편이었다. 그러나 많이 취해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저기 언덕배기 공중전화 부스까지 아저씨의 휠체어 좀 밀어 줄래.”
사내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는 공중전화 부스 한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제법 가파른 언덕배기였다. 음산한 날씨 때문인지 행인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택시를 불러야겠는데, 하필이면 공중전화 부스가 언덕배기에 설치되어 있구나.”
사내가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밀어 드리겠어요.”
나는 탈진상태였지만 그렇게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별로 인상이 고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불량배 노릇도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서커스 단원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누군가 말을 걸어 주었다는 사실이 반가울 뿐이었다. 어쩌면 빵이라도 한 개 얻어먹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몇 살이냐.”
언덕배기를 오르며 사내가 내게 물었다.
“열한 살이요.”
나는 힘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름은.”
“김동명이요.”
보육원에서는 벌써 신고처리를 해두었을 것 같았다. 아무에게나 신분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적당한 가명이 금방 생각나지 않아서 얼떨결에 본명을 말해 버리고 말았다.
“넌 집이 어디냐.”
“아저씨, 공중전화를 걸 동전은 준비해 두셨나요.”
“언제나 준비해 가지고 다니지.”
“동전만 집어삼키고 벙어리가 되어 버리는 공중전화가 많거든요.”
“부모님은 무얼 하시는 분들이시냐.”
“자꾸만 말을 시키면 입 속으로 바람이 들어가서 밀기가 힘들어진다구요.”
사내는 왜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들만 내게 던지는 것일까. 나는 바람을 빙자해서 사내의 질문을 봉쇄해 버리고 말았다.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에 동전이나 몇 푼 쥐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장애자의 휠체어를 밀어 주고 어떤 대가를 기대하는 자신에 대해 혐오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독하게 배가 고팠으므로 기대감은 언덕배기를 다 오를 때까지도 의식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 않고 있었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로 때워 버리면 어떻게 하나 은근히 걱정까지 될 지경이었다. 굶주림이 인간을 얼마나 치사하게 만드는가를 나는 처음으로 뼈져리게 절감하고 있었다.
“힘들지.”
사내는 두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힘주어 굴려대고 있었다.
“아니요.”
나는 씩씩하게 대답하고 싶었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숨이 턱에 차오르는 목소리였다. 공중전화 부스 앞에까지 당도했을 때는, 나는 탈진해서 걸음조차 제대로 걷지 못할 지경이었다.
“정말로 고맙구나.”
“괜찮아요.”
언덕배기에는 바람이 폭도들처럼 몰려다니고 있었다. 바람의 발길질에 걷어채인 휴지들이 나지막이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 억덕배기 아래로 도망치고 있었다. 사내의 기름기 없는 머리카락도 난폭하게 쥐어뜯기고 있었다.
“비가 올 것 같은데.”
사내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음산한 회색 하늘이 무겁게 침잠하고 있었다. 비가 오면 어떻게 하나. 나는 마음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왕 도와 주는 김에 한 가지만 더 도와 주지 않겠니.”
“뭔데요.”
“휠체어를 타고 전화를 걸기가 불편해서 그러니까, 네가 대신 좀 걸어주면 고맙겠구나.”
사내는 내게 전화번호를 일러 주고 백 원짜리 동전 한 개를 내밀었다. 공중전화 부스는 장애자용이 아니었다. 동전을 넣고 번호를 누르니 발신음이 떨어졌다. 나는 나선형 전화선을 최대한으로 늘여서 송수화기를 사내에게로 건네 주었다. 사내는 택시회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주 짤막한 내용의 통화였다. 무려 팔십 원이나 요금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재발신 버튼을 누르고 사내에게서 건네받은 송수화기를 받침대 위에다 뉘어 놓았다. 남아 있는 팔십 원에 자꾸만 눈길이 가고 있었다. 국화빵 여덟 개를 사먹을 수 있는 거금이었다. 그러나 뱉아내게 할 수는 없었다.
“정말로 고맙구나. 이제 잠시만 기다리면 모범택시가 이리로 오겠지.”
사내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후둑후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센 장대비로 변해 버렸다. 불시에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매캐한 먼지 냄새가 맡아져 왔다. 나는 서둘러 사내를 공중전화 부스 옆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 밑으로 피신시켰다. 그리고 점퍼를 벗어 우산처럼 머리 위로 펼쳐들었다.
“여러 가지로 신세를 지게 되는구나.”
사내는 한 손을 안주머니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틀림없이 어떤 보상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사내는 어이없게도 한 장의 명함판 사진을 내게 내밀어 보이고 있었다. 영화배우처럼 예쁜 여자 사진이었다. 희고 가지런한 이를 반쯤 드러낸 채 화사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너 혹시 어디서 이런 여자 본 적이 있니.”
사내가 내게 물었다.
“아니요.”
내가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내 마누란데 삼 년 전에 도망쳐 버렸다.”
사내는 허탈한 표정으로 사진을 다시 안주머니 속에다 집어넣었다. 그리고 소주병 뚜껑을 열고 남아 있는 술을 단숨에 모조리 마셔 버렸다. 사내가 택시를 타고 떠나 버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할수록 난감했다. 비는 아까보다 더욱 기세를 더해 가고 있었다. 점퍼를 우산처럼 펼쳐들고 있기는 했지만 비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전신이 이미 축축해져 오고 있었다. 으슬으슬 한기도 느껴져 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배가 고파서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너 고아원에서 탈출한 아이지.”
갑자기 사내가 은밀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나자빠져 버릴 지경이었다. 마치 감전이라도 당해 버린 듯 전신이 굳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강경한 어조로 황급히 사내의 추측을 부정하고 있었다.
“아니예요.”
나는 당장이라도 도망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단다.”
사내가 말했다.
“아니라니까요.”
나는 화난 목소리로 소리치고 있었다.
“정직하게 말해도 괜찮단다. 나도 너만한 나이 때 고아원을 탈출했지. 사흘을 굶고 나니까 눈알이 뒤집혀서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들까지 구운 감자로 보였단다.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게 배고픔이라는 사실을 너도 이제는 잘 알고 있겠구나. 너는 며칠이나 굶었니?”
“저는 지금 하나도 배가 고프지 않아요.”
나는 부인하고 나서도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결국 굶어죽고 말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택시가 오면 식당으로 직행하자. 어떤 음식을 먹을까. 불고기가 좋겠지. 너한테 신세를 진 보답으로 한턱 내는 거니까 조금도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단다. 사양하면 오히려 내가 몹시 미안해질 거야. 알겠니.”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나는 이제 부정할 의지도 상실하고 있었고, 도망칠 의지도 상실하고 있었다. 거센 빗줄기를 헤치며 모범택시 한 대가 가파른 언덕길을 기어오르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택시가 오는구나. 이제 불고기를 먹으러 가자. 불고기가 괜찮겠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견딜 수 없는 서러움만 북받치고 있었다. 택시가 도착하자 사내가 한쪽 팔로 다정하게 내 허리를 감싸안았다. 나는 그만 자제력을 잃어 버린 채 으아앙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비는 쉽사리 그칠 것 같은 기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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