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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52호
단기 4343 / 서기 2010. 5. 17 (음력 4. 4)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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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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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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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충고를 받지만, 오직 현명한 자만이 충고의 덕을 본다.(푸블릴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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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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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멀기’와 ‘싸다’
남녘의 어느 바닷가에서 혹시 쓰고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말에 ‘물멀기’라는 말이 있다. 이는 북녘에서 자주 쓰는 말로 ‘큰 물결’이라는 뜻이다. 북녘의 문학작품에서는 “화약에 누기가 차서 불이 달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총을 놓고 물가로 되돌아가 높아지는 물멀기를 근심스런 눈길로 바라보며 정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정호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김정호>, 강학태, 문예출판사, 1987년, 270쪽)와 같이 쓰이는 말이다.
북녘말에서는 ‘-답다’ 대신에 ‘-싸다’를 써서 예를 들면 ‘남자싸다’ 같은 말을 만들기도 한다. 문학작품에서는 “한번은 떡을 치다가 터쳐 버린 그의 작업복 겨드랑이를 자기가 말없이 기워 준 일이 있었는데 총각은 남모르는 따뜻한 마음을 이쪽에 안겨 주고 가버린 듯했다. 알고 보니 유호림은 남자싸게 건장한데다 일솜씨는 물론 성미까지도 산매처럼 걸패스러워 나무랄 데가 없는 사나이였다.”(<그들의 운명>, 현희균, 문예출판사, 1984년, 4쪽)와 같이 쓰이고 있다. 이때 ‘걸패스럽다’의 경우 북녘 사전에 ‘걸패’만 보이는데 ‘걸싸고 기운찬 패거리’로 풀이되어 있다. ‘걸싸다’는 ‘성미가 몹시 괄괄하고 세차다’는 뜻이다.
전수태/전 고려대 전문교수
바지선
물 위의 운송 수단인 배는 크게 군함, 상선, 어선, 특수선으로 분류된다. 이것들은 각각 수십 종류로 다시 나뉜다. 군함에는 전함·순양함·구축함·항공모함 등이 있고, 어선은 어로선·공선·어선·운반어선 등으로 나뉜다. 화물선·객선·화객선 등으로 나뉘는 상선과 작업선·운반선·단속선 등의 특수선은 더 복잡하게 나뉜다. 그만큼 인간의 활동은 다채롭다고나 할까.
가까운 바다나 강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지선’(barge船)은 특수선의 하나로서, 화물을 실어 나르는 기능을 하고 길고 좁게 만들어지며 바닥이 평평한 것이 특징이다. 이름에 있는 영어 ‘바지’는 ‘밀치고 가다’라는 뜻의 동사이기도 해서, 물건을 가득 싣고 당당히 물살을 헤쳐나가는 배의 모습을 생각하여 지은 이름이라 추측하게 된다.
바지선은 대개 자체 동력 장치가 없고 바닥이 평평해서 항만 내부나 운하, 강어귀에서 짧은 거리를 예인선에 의해서 움직이며, 간혹 밀배를 이용하여 밀려가는 수도 있다. ‘바지’와 ‘라이터’(lighter)로 구별되는데, 두 지점 사이에서 화물을 운반하는 배를 바지, 배가 커서 항구에 댈 수 없거나 사정이 있어 대지 못하는 경우에 화물을 목적지에 싣고 내리는 배를 라이터라고 한다.
‘바지’는 그 자체로 배라는 뜻이 들어 있어 일본말에서도 ‘바지’(バ-ジ)지만, 우리는 ‘선’을 붙여서 배의 하나임을 알 수 있게 표시하고 있다.
김선철/문화체육관광부 학예연구관
아양
겨울에 여성들이 머리에 쓰던 물건 가운데 아얌이 있다. 위는 터져 있고 이마만 두르게 돼 있다. 앞과 뒤에는 붉은색의 수술 장식이 늘어져 있다. 댕기 같은 아얌드림도 뒤로 늘어뜨린다. 머리를 조금 움직이면 수술 장식과 아얌드림이 흔들린다. 아얌이 떨리는 것이다. 시선을 끌게 된다. 귀염을 받으려고 알랑거리는 말이나 짓, 아양은 아얌에서 왔다.
‘ㄱ’과 ‘ㅂ’ 뒤의 된소리
한 단어 안에서 ‘ㄱ’과 ‘ㅂ’ 받침 다음 음절은 된소리가 난다.‘국수(국쑤), 깍두기(깍뚜기), 맵시(맵씨), 몹시(몹씨)….’ 된소리로 나는 데 뚜렷한 이유는 없다. 그러나 소리 나는 대로 적지 않는다. 반드시 된소리로 난다는 규칙성을 가지고 있어서 예사소리로 적는다. 같거나 비슷한 음절이 거듭될 때는 된소리로 적는다.‘쓱싹쓱싹, 딱따구리.’
여위다, 여의다
뛰어난 개인기로 지난해 유럽 최고 선수상을 받은 브라질 축구 대표팀의 호나우지뉴는 항상 웃는 얼굴로 유명하다. 그늘이라곤 없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8살 때 아버지를 '여위고' 브라질 남부의 가난한 도시에서 어려운 성장기를 보냈다. 그렇기에 그 웃음이 더 의미 있는 건 아닐까.
'여의다'와 '여위다'의 의미를 혼동해서 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위 글의 '아버지를 여위고'도 '아버지를 여의고'로 해야 바르다. '여위다'는 몸에 살이 빠져 파리하게 된다는 의미로 "그는 그동안의 무리한 다이어트 때문인지 얼굴이 홀쭉하게 여위고 두 눈만 퀭하였다"와 같이 쓰인다. '여의다'는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이별하는 것을 뜻한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자랐다"처럼 쓴다. '여의다'에는 딸을 시집보내다라는 의미도 있으므로, "이번 봄에 우리 막내딸을 여의었다"와 같은 글을 보고 '저 사람의 막내딸이 죽었구나'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또한 자주 쓰이진 않지만, '여의다'에는 멀리 떠나보내다라는 의미도 있다. "그가 출가한 목적은 일체의 번뇌를 여의기 위해서였다"에서는 '여의다'가 그런 뜻으로 쓰였다.
수훈감
한국 축구의 16강을 향한 꿈에 한발 다가서게 했던 프랑스와의 일전. 그날 경기는 즐거운 얘깃거리도 남겼다. 감각적인 골의 박지성이냐, 동물적인 선방의 이운재냐를 놓고 '수훈감'논쟁을 벌이며 감동의 여운을 만끽한 이가 적지 않다.
어떤 일에 공훈을 세우는 것을 '수훈(樹勳)'이라고 한다. 여기에 '감'을 붙여 '수훈감'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2001년 컨페드컵에서 우승 후보 프랑스에 다섯 골을 내줬던 이운재가 이번엔 1실점으로 막아 독일의 축구 전문지들은 그를 주저 없이 수훈감으로 꼽았다" "조재진이 헤딩으로 떨어뜨려 준 공을 발끝으로 살짝 골문 안으로 집어넣어 극적인 동점골을 만든 박지성이 단연 수훈감이다"와 같이 쓰고 있지만 '수훈갑'이라고 해야 한다.
신랑감처럼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나타내는 말인 '감'을 붙인 '수훈감'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신랑이 될 만한 인물, 신랑이 될 사람을 신랑감이라 하는 것에 비춰 '수훈감'이라 하면 공훈을 세울 만한 인재라는 뜻이 돼 문맥에 맞지 않는다.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첫째를 이르는 말인 '갑'을 넣어 일상적으로 쓰는 '수훈갑(樹勳甲)'은 공훈(勳)을 세움(樹)이 으뜸(甲)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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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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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황혼 - 허연 -CANVAS에 유채
이따금씩 피를 팔러 가기도 했습니다 카스테라 한 봉지씩 사들고 지하 주차장에 모여 노래를 부를 때면 언제나 제일 먼저 울음을 터뜨리는 건 지하도입구에서 구두를 닦던 혼혈아 경태녀석이었습니다 애써 보이려 하지 않아도 우리들의 가난과 짝사랑은 속살을 비집고 나와 찬 바닥에 나뒹골곤 했습니다 세상이 아름답다고 믿던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누가 그었는지 우리들의 기억 속엔 붉은 줄이 하나둘씩 지나가 있었고 시장골목에서 소주를 마시며 우리는 어느새 그것들을 용서했습니다 시대극장 앞 길 유난히 눈길이 자주 마주치던 조그만 창녀애를 구해 내는 꿈을 꾸다 잠이 깨던 제기동 자취방 눈이 많았던 겨울이었습니다 나 혼자 용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중국집 구석방에서 녀석들은 나를 끌어안았습니다 희미한 알전구 속에서 흘러내리던 눈물 우리가 미친 듯 소리를 질러대던 무심한 하늘에선 진눈깨비가 내렸습니다 겁이 많던 경태를 서울 구치소에서 면회하고 돌아오던 날 우리는 문신을 새겼던 가느다란 팔목을 확인하며 버리고 싶어도 땅끝까지 따라오던 날들과 그 거리를 떠났습니다 몇은 지원병이 되어 몇은 직업 훈련원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어깨를 누르고 있던 어디에도 없는 내일로 떠나며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텔레비전처럼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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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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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암 가는길 - 최희선
하늘 땅 극락까지 단숨에 안아보려
관악산 산자락에 오솔길을 더듬으면
한 천년 자비로 솟는 옹달샘이 날 반기고.
타는 맘 식혀 보려 물 한 쪽박 퍼 올리면
노스님 깊은 설법 내 가슴을 철렁이고
연주암 독경 소리 따라 구름조차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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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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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잎 피리 - 한정동
그 누가 부는지요 갈잎의 피리.
사람은 안 보이고 강 건너 저편
이따금 파란 물결 남실거리면
오라구 가라군지 갈새가 운다.
강가엔 아지랑이 졸고 있는데
그 누가 부는지요 갈잎의 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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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이글저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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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이야기 - 김형균 엮음
2. 불가사의의 진실을 찾아서
우주에서 온 흡혈귀
파라고무나무가 하늘을 온통 뒤덮은 아마존강 유역, 그 강 아래쪽 어느 작은 마을에서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이 사건이 맨 처음 일어난 것은 1981년 5월의 어느 날이 다. 베렘 마을에 오로라드 페르난데스라는 18세의 소녀가 살고 있었다. 오로라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어머니와 함께 집안일을 돕고 있었다. 그날도 오로라드는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를 전부 해치웠다. 그리고 빨래를 널기 위해 뒷마당으로 나갔다. 한참 빨래를 널던 오로라드는 실수로 옷 하나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이런, 다시 빨아야 겠네." 오로라드가 떨어진 옷을 주어 막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때, 오로라드는 자기 바로 앞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오로라드는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보았다. 순간, 오로라드는 발이 땅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자기 앞에 서 있는 것은 번쩍번쩍 빛이 나는 이상하게 생긴 물체였다. "누, 누구 없어요? 좀 도,도와 주세요!" 그때였다. 그 물체에서 푸른 빛 한줄기가 오로라드를 향해 쏟아졌다. 그 빛을 맞은 오로라드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후 오로라드는 5일만에 깨어났다. 그러나 깨어난 후에도 3일간은 멍청히 앉아 있기만 했다. 오로라드의 아버지는 도시의 큰 병원에 연락을 했다. 그래서 올랜드라는 의사가 오로라드를 진찰하기 위해 직접 방문했다. 올랜드 의사가 진찰을 하던 중 크게 소리쳤다. "이 소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오른쪽 가슴에 이상한 상처 자국이 있습니다!" 오로라드의 아버지는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우리 딸이 무슨 나쁜 일이라도 다했다는 말씀입니까?" 올랜드 의사가 그 상처 자국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심각하게 대답했다. "오로라드 아버님, 진정하십시오. 이건 사람의 짓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곤충이나 짐승의 이빨자국도 아닙니다. 우선 오로라드 양의 혈액을 검사해야겠습니다." 올랜드 의사는 오로라드의 혈액을 검사했다. 그러자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오로라드의 피를 누군가가 뽑아낸 것이다. 올랜드 의사는 조심스럽게 이 사실을 오로라드 아버지에게 알렸다. "오로라드 양은 누군가에게 피를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 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로라드의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기겁을 했다. "아이구 맙소사, 흡혈귀가 나타난거야. 이제 우리 딸은 죽은 목숨이구나." 오로라드 아버지는 땅바닥에 주저 앉아 큰 소리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올랜드 의사는 그를 진정시키며 덧붙여 말했다. "따님은 괜찮을 겁니다. 많은 양의 피를 빼앗기지는 않았습니다." 며칠 후, 마을에는 오로라드가 흡혈귀에게 피를 뺏겼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동네 사람들은 너나할 것없이 마늘로 목걸이를 만들어 대문 앞에 걸어 두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문을 걸어잠그고, 불안과 공포에 몸을 떨었다. "아이고, 언제 우리집에도 그 흡혈귀가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예요. 모두들밖에 함부로 나돌아다니면 안돼요." 오로라드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말짱해졌다. 그러나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올랜드 의사는 그녀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노력을 계속했다. "오로라드 양, 다시 한번 차근차근 생각나는 대로 얘기해보세요." "전 빨래를 널다가 이상한 물체를 보았어요. 그리고 갑자기 그 물체에서 파란 광선이 나에게 비쳐졌어요. 그 다음엔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올랜드 의사는 그후에도 계속해서 이 사건을 연구했다. 그러나 그 물체가 무엇이었나를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흡혈귀를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 있었다. 칸디리에 사는 로저 타파레스트 부인이다. 로저 부인은 굉장히 말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는 마굿간을 만들어 그곳에 자기가 가장 아끼는 말 두 마리를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2시 무렵이었다. 마굿간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말들이 무엇에 놀라 날뛰는 소리였다. 로저 부인은 서둘러 마굿간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마굿간 앞에는 요란한 광선이 새어나오고 있는 둥근 물체가 놓여있었다. 로저 부인은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때, 마굿간 안에서 이상하게 생긴 생물체가 걸어나왔다. 그것은 난쟁이같이 키가 작달막하고 머리는 굉장히 컸다. 그리고 두 팔은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아주 길었다. 로자 부인은 입술을 깨물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순간, 그 생물체가 로자 부인 쪽으로 다가왔다. 공포에 덜던 로저 부인은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둥근 물체에서 삐익삐익하는 요란한 신호음이 들려왔다. 그러자 그 이상한 생물체는 재빨리 몸을 돌려 그 둥근 물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 물체에 올라탔다. 곧이어 그 물체는 하늘로 붕 떠오르더니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로저 부인은 한참을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반쯤 정신을 잃었다. "분명 나쁜 꿈을 꾼거야. 한잠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로저 부인은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로저 부인은 마굿간에 들어갔다가 비명을 질렀다. "아악, 아~ 악!" 로저 부인이 몹시 아끼던 말 두 마리가 모두 죽어 있었던 것이다. 로저 부인의 신고로 경찰들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몰려왔다. 그리고 수의사들도 죽은 말들을 검사하러 왔다. 수의사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죽은 말들의 몸속에는 피가 한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존강 유역의 사람들은 사람과 동물의 피를 무차별하게 빼앗아간 그 이상한 생물체를 '우주에서 온 흡혈귀'라고 불렀다. 그것은 아마도 UFO(미확인 비행물체)를 탄 우주인들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지구의 생물을 연구하려고 피를 보아 간 건 아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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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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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아귀
바루공양에 얽힌 몇 가지의 설화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아귀에 대한 것이다. 이놈의 아귀는 살아 생전에 편안하게 놀면서 배불리 먹으려고만 한 사람들이 죽어서 된 귀신이다. 귀신이 될 수 밖에... 듣자하니 이 귀신의 입은 바늘구멍만하고 배는 또 남산만하다 하니, 아무리 먹어도 배부를 리 없다. 이 귀신들은 바루 소리만 나면 모여드는데, 공양하는 곳에서 지붕을 오르내리거나 방문을 넘나들면서 조바심을 내다가는 절수물을 받아마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형편이다. 그런데 만약 재수 없게도 이 물에 고춧가루 하나라도 끼어 있는 날에는 입을 꽉 막아버리니, 아귀는 더 먹을 수가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식사를 할 때에는 밥알 하나라도 남기지 말고 깨끗이 먹어치워야 하는 것이다.
지옥
어느 성직자가 자신은 사후에 반드시 천국으로 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죽었고 마침내 그곳에 이르렀다. 모든 것이 황홀하고 아름다웠다. 그가 들어간 집은 너무나도 훌륭한 궁전같은 집이었다. 그리고 어떤 욕구가 일어나는 순간, 하인이 그 욕구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그의 앞에 나타났다. 배가 고프면 그가 맛본것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을 든 하인이 거기에 있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가 목이 마르면 그 욕구가 채 생각되기도 전에, 그것이 느낌으로만 있을 동안에 마실 것을 들고 하인이 나타났다. 이런 꿈같은 생활이 계속되었고, 그는 얼마동안은 무척 행복했다. 그러다가 그는 차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데, 가만히 의자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직 도를 행하는 사람만이 가만히, 언제까지라도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성직자는 이삼 일 동안은 행복했다. 모든 것이 쾌적했다. 살아 있었을 때 그는 매우 활동적이었다. 매우 많은 공적인 봉사와, 전도와 교회 일과, 설교로써 인도하는 일들을 했었다. 그는 사회의 여러 공동체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 그는 쉬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이 쉴 수가 있는가. 그는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때 하인이 나타나 물었다.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지금 당신은 목마르지도 배고프지도 않는데,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불안해진 성직자는 말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여기 언제까지나 앉아 있을 수가 없소. 나는 무슨 일이든 하고 싶소." 하인이 대답했다.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당신의 욕망은 여기에서 우리들에 의해 충족되어질 것입니다." 다시 성직자가 물었다. "이 곳은 어떤 종류의 천국인가?" 하인이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누가 이곳을 천국이라고 말했습니까? 이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입니다. 누가 당신에게 이곳이 천국이라고 말했지요?"
- 그곳은 정말 지옥이었다. 이제 그는 이해하게 되었다. 편안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그곳은 지옥이다. 그는 머지 않아 미쳐버릴 것이다. 어떤 교제나 대화, 봉사, 기독교로 개종시켜야 할 이교도, 지혜롭게 만들어야 할 우매한 사람들이 거기에는 없었다. 그러니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오직 도를 행하는 사람만이 지옥을 천국으로 바꿀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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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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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7장 나 그리고 인생
공부
억지로 공부시키지 마라. 공부를 시키는 부모도 힘들고 억지로 공부하는 자녀도 힘들다. 억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지만 공부는 정말로 억지로 안 된다. 자녀가 죽도록 공부하기 싫어하면 심각하게 재고해 보는 것이 현명하다. 배운다는 것, 남의 자녀들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교육시킨다는 것은 자녀에게나 부모에게나 좋은 일이지만 애석하게도 공부만은 억지로 안 된다. 공부에 전혀 흥미 없는 자녀를 강제로 책상 앞에 앉혀서 책을 펴놓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책의 내용까지 머리 속에 집어넣게 할 수는 없다. 꼭 고등 학력을 가져야만 좋은 인생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등 학력자가 좀더 유리하긴 하겠지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은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소설 동의보감>을 쓴 이은성 씨는 초등 학교 나온 것이 학력의 전부이고, 세계적 기업 현대 를 이룩한 정주영 씨도 중학교에는 가 보지도 못했다. 공부에 흥미도 없는 자녀를 단지 못 배운 한과 체면에 얽매여 억지로 공부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부분의 얼치기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어설프게 가방만 들고 학교에 왔다갔다할 바에야 일찌감치 적성을 키워 주는 편이 자녀의 장래를 위해서는 낫다. 공부도 못하면서 특기할 만한 기술도 없는 얼치기 자녀를 만들어 속썩이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그것이 백 번 나은 일이다.
험담
타인들이 나누는 험담에는 절대로 가담하지 마라. 면전에 없는 한 어느 누구라도 험담거리로 등장시킬 수 있는 것이 험담하는 자들의 간교함이다. 험담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들이 나누는 험담에는 무조건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 그 험담에 가담하는 것은 자신을 험담거리로 제공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들은 나와 험담을 늘어놓을 때는 제3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지만, 다른 사람과 험담을 늘어놓을 때는 바로 나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험담하는 자는 별로 신뢰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 내 앞에서 제3자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 자는 반드시 다른 사람 앞에 가서 나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는다. 험담할 때 가담해 주었던 사람이라고 해서 험담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가 험담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었던 것은 면전에 존재했었기 때문이지 결코 험담거리가 없었기 떄문은 아니다. 타인 앞에서 제3자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확인된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가지고 험담을 하는 것은 타인에게 약점만 잡히는 결과를 낳는다. 그것을 듣고 있는 타인은 다른 사람 앞에 가서는 자신에 대해서도 험담을 늘어놓을 것이라는 뒷맛 때문에, 제3자를 나쁘게 보는 것이 아니라 험담하고 있는 자신을 더 나쁘게 보고 경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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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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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를 위하여 - 김규항·김정란·진중권·홍세화
김규항 에세이
어머니
'하루감옥체험`을 했다. 명동성당 앞에 지어놓은 0.75평 짜리 감방 일곱 개 가운데 하나엔 내 이름이 적혀 있고 나는 그곳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참여해 달라는 연락이 왔을 때 나같은 건달을 뭐에 써먹으려나 싶었지만 군말 없이 따랐다. 민가협, 그들은 우리가 알량하나마 나름의 신념을 건사하고 살 수 있도록 사랑하는 가족을 담보로 제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이라면 우리 가운데 누구에게든 하루쯤 감옥 체험을 하라도 권유할 자격이 있다. 또한 하루감옥체험은 한국에는 양심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더러운 파시스트들로부터 우리의 명예를 확인할 소중한 기회다. 0.75평 짜리 감방은 내 짐작보다 더 좁았다. 이런 곳에서 수십 년을 지내고도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체제의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 신념을 가진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곳에 사람을 수십 년 씩 가두는 국가에 우리가 걸 수 있는 신뢰는 어떤 것일까. 허락 받지 않은 상념에 빠진 나에게 그들(비전향장기수 영감님들)이 찾아왔다. 전향서라는 이름의 종이 한 장과 수십 년의 세월을 맞바꾼 그들의 얼굴을 수도자처럼 맑았고 그들의 몸가짐은 사위를 바로 세울 만큼 정중했다. 그들이 창에 얼굴을 대고 자신을 소개한 후 "고생 많으 십니다"라고 고개를 숙였을 때 나는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그저 "죄송합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쯤이었다. 그들은 내가 있는 곳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있던 곳과 모양과 크기가 비슷하다 했다. 그러나 그런 도량형 상의 우사함이한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가. 수십 년 동안 여섯 면의 벽은 하루하루 그들을 향해 다가왔을 테니 말이다.
세 살쯤 되었을까. 이른바 국민의 정부 하에서 일어난 조직사건인 '영남위 사건`으로 투옥된 양심수의 딸아이가 찾아왔다. "아빠도 이런데 계셔,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엄마 팔에 안간 아이의 눈엔 이슬이 맺혔고, 인사를 재촉하는 엄마의 말에 아이는 자꾸만 몸을 빼면서도 눈길만은 나를 놓치려 하지 않는다. 곱고 예쁜 세상만 보여주기에도 모자랄 저 아이의 눈망울에 이 비열하고 사악한 세상을 마련한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방법은 무엇일까. "아저씨 힘들지 않으세요." 초등학교 일 학년 남자아이가 제 키를 넘기는 창에 간신히 얼굴을 대고 묻는다. "괜찮아, 아저씬 조금 있으면 나가." "우리 아빤 광주교도소에 있는데." "아빠가 뭘 잘못했지?" "아빤 착한 일 해서 잡혀가셨어요." 고개를 떨구는 저 아이가 익힌 세상의 이치는 '착한 일 하면 잡혀가는` 곳이다. 아이에게 양심과 정의를 가르치는 일이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정신적 성취들(학문적, 예술적, 문화적, 혹은 종교적인)은 한낱 오물에 불과하다. 교도관들(역시 양심수 출신인 청년들)의 감시를 피해 훔쳐 본 명동거리는 텔레비전 스케치 화면처럼 낯설었다. 따가운 햇살 아래 모델 같은 몸매의 아가씨들이 잦은 집회로 길이 든 명동성당 입구를 따분한 얼굴로 흘끔거리며 지나가고, 성당으로 오르는 고급승용차들은 진입로에 주저앉은 보라색 스카프의 어머니들에게 끊임없이 비켜줄 것을 요구했다. 저 아리따운 아가씨들은 자신들이 지켜 가는 다이어트에의 신념마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갇힌 이들의 신념 덕에 가능함을 알고 있을까. 고급승용차 뒷좌석에 우아하게 들어앉은 자신이 지켜 가는 종교에의 신념마저 한여름 땡볕 아래 주저앉은 저 어머니들의 뚫린 가슴 덕에 가능함을 알고 있을까.
어머니들은 창살 사이로 내 손을 어루만지며 자기 자식인 양 안타까워했다. 이곳은 공갈 감옥이고 나는 공갈 양심수지만 그들은 진짜 어머니들이었다. 불과 몇 년전, 제 자식의 안위만을 기원하며 살던 그들은 이제 이 나라의 가장 추악한 부위를 몸으로 겪으면서 제 자식이 풀려나고도 남의 자식 걱정에 거리를 누비는 투사가 되었다. 내 손은 잡은 채 미소지으며 한 어머니가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게 엄마잖아. 엄마의 힘은 하늘도 움직일 수 있거든. 우린 무서울 게 하나도 없어." (99년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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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양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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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 200선 해제 3 - 반덕진
페스트 La Peste - 카뮈(Albert Camus, 1913~1960)
2차대전 후의 혼란하고 무질서한 정신적 풍토위에 <부조리의 철학>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기초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 했던 카뮈의 대표작. 오랑 시에 페스트가 만연했다는 가정하에 인간을 전멸시키려는 악과 이에 대한 인간의 집단적인 반항을 묘사하면서, 이 과정에서 인간의 연대의식과 존엄성을 역설했다. <이방인>에서 제시된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이러한 연대의식만이 인류평화에 도달하게 할 수 있다는 카뮈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분명하게 전달된다.
사르트르와 함께 현대 젊은이의 우상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고 모든 것이 '부조리'하다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나의 부르짖음을 나는 의심할 수 없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며 <부조리>와 <반항>의 사상을 제시한 최연소 노벨 문학상 수상자 카뮈. 카뮈는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태어나 2살 때 부친이 1차대전에 참가하여 마른 전투에서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가서 고집 센 외할머니, 그리고 다리가 불구인 외삼촌과 함께 방 2개에 5명이 살았다. 후에 카뮈가 "나는 '자유'를 마르크스 속에서 배우지 않고 가난 속에서 배웠다."고 술회했듯이 어린 시절을 가난 속에서 보냈다. 당시 의무교육 덕분으로 국민학교를 마친 카뮈는 가정형편상 더이상의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웠으나, 그의 재능을 아까워한 담임 선생님의 배려로 중고교에 입학하게 된다. 노벨 문학상 수상연설이 책으로 나왔을 때 그는 이 책을 옛 스승 제르맹에게 바쳐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는 중고교 시절을 계속 장학생으로 지내면서 축구 등 운동에 몰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17세 되던 해 폐결핵의 첫 발작이 일어나서 좋아하던 운동도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불행중 다행으로 철학자이자 교수인 장 그르니에를 알게 되어 철학과 문학에 뜻을 둔다. 이 스승과 제자간의 우정은 평생을 두고 꾸준히 계속되었다.
20세에 결혼했으나 1년 만에 이혼하고 공산당에 입당하지만 다음 해에 탈당한다. 알제 대학시절에 그는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는데,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해운업자에게 고용되기도 하고 자동차부품 판매원 노릇도 했다. 이러다 보니 평범한 대학생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산 체험을 했다. 지드, 말로, 몽테를랑 등의 작품을 탐독한 것도 이때였고, 아마추어 극단을 조직하여 연극활동에 적극 참여한 것도 이때였다. 졸업 후 진보적인 신문 <알제리 레퓌블리캥>에서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면서 당국의 비위를 건드려 알제리에서 추방된다. 파리로 진출하여 <파리 스와르>의 기자로 1941년 6월까지 근무했다. 그는 이때 <이방인>을 탈고하고, 에세이 <시지포스의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의 파리 침공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였다. 독일 점령하의 파리에서 그는 지하신문 <콩바>의 주필 노릇을 하며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한다. 이 기간에 출간된 <이방인>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아무 의식 없이 살다가 우연히 살인을 하고 사형선고를 받은 뫼르소가 죽음에 직면해서 비로소 인생의 부조리를 깨닫고 오히려 행복하게 죽음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시지포스의 신화> 역시 고독과 인생의 모순을 고백적 감상형식으로 해설하여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1947년 발표된 장편 <페스트>는 그의 철학의 총결산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여기에서 전염병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우애를 역설하여 전후세대의 정신적 지주로 부상했다. 그는 전쟁과 사형을 반대했으며, 역사를 절대시하는 마르크스주의나 스스로를 절대시하는 사상적예술적 니힐리즘에도 반대한다. 그는 초기의 주요개념인 <부조리>에서 <반항>으로 옮겨갔다. 두번째 장편인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사르트르와의 사상적 논쟁이 벌어져 10년간 지속되었던 우정이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가장 괴로운 시련은 자신이 태어났던 알제리에서 일어난 전쟁이었다. 그는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프랑스의 불공평한 식민정책을 비난했다. 1956년에는 <반항적 인간>의 논리를 거꾸로 써서 그린 풍자소설 <전락>을 발표했다. 44세인 다음해에 스웨덴의 왕립한림원은 "오늘날 인류의 양심에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명백하게 파헤친 그의 전 작품의 공로"를 들어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수여했다. 1960년 자전적 소설인 <최초의 인간>을 집필하는 도중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부조리와 반항의 문학세계
카뮈의 문학세계는 <이방인> <시지포스의 신화> <흑사병> <반항인> <전락>등의 관계와 발전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간단히 말해 <부조리>와 <반항>의 철학이다. 부조리란 불합리한 것,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가 부조리한 것으로 보았던 것은 바로 인간세계에 있어서의 존재, 즉 인생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합리에의 욕망>과 세계의 <합리적이지 못한 것> 사이에 생기는 모순, 그것이 바로 작가가 내세우는 <부조리>라는 것이다. 그의 <시지포스의 신화>가 말하는 바와 같이 결국 굴러떨어지는 줄 알면서도 땀흘려 바위를 굴려 올리려는 존재, 결국 죽고 마는 허무한 존재이면서도 열심히 사는 존재, 결국 무의미해지는 인생을 의미있게 살려는 존재인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에게 피치 못할 숙명으로 주어진 부조리는 누구나가 언제나 느끼는 것은 아니다. 흔히 우리는 부조리를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 즉 의식이 졸고 있는 것이다. 그저 관습에 의해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일상생활, 인생에 뜻이 있는지 없는지도 문제삼지 않는 그런 생활, 그것은 실존자의 생활이 아니다.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서 부조리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될 때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인간이라야 <실존>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카뮈의 이러한 사상을 통해 본다면 <부조리의 인식>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부조리에 대해, 부조리한 세계를 인식하고 여기에 대항하여 인간의 가치를 복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부조리는 당연히 <반항적인 인간>을 낳는다. 이렇게 해서 <이방인>과 <시지포스의 신화>에서의 중심개념인 <부조리>는 <페스트> <반항인>에서 <반항>으로 옮겨진다.
인생의 부조리와의 투쟁을 그린 작품
페스트가 전 도시를 죽음으로 휩쓰는 과정에서 이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숭고한 인간애를 그린 이 작품은 알제리의 오랑 시에 흑사병이 발생한다는 가상의 소설로, 출간과 더불어 베스트 셀러가 된 소설이다. 여기서 페스트는 모든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프랑스 영토인 알제리의 오랑에서 어느 날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쥐들이 집안과 지하실 창고, 하수구에서 몰려나와 휘청거리며 연이어 빛을 보고는 죽어갔다. 시내의 모든 쥐들이 이처럼 죽더니 이제는 사림들이 또 갑자기 고열과 임파선이 붓고 몸에 종기가 생긴 끝에, 무서운 악취를 풍기며 죽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원인 모를 병은 흑사병으로 밝혀졌다. 시에서는 행정적인 조치로 시외곽을 통하는 모든 수송망과 도로망을 차단시켰다. 무장한 군대가 삼엄한 경계를 맡고 도시는 죽음의 공포 속으로 떨어진다. 의사 베르나르 뤼는 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어느 산중으로 보내고 이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파리에 있는 아내를 남겨둔 채, 아랍인의 생활상을 취재하러 오랑에 들렀던 차였다. 자연히 그들은 이 도시에서 고립되게 되었다. 전염병은 날이 갈수록 더욱 악화되어 시민들의 생명을 빼앗기 시작했다. 매일 수십 명씩 죽어가더니 이제는 수백 명의 사망자수를 기록했다. 자연히 시내에서는 생필품의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환자 수용시설이나 의약품, 구호대 인원은 부족하게 되어 심각한 사태를 야기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죽음의 도시로 변한 것이다. 환자가 일단 생기면 의사가 달려가 확인하고, 페스트 환자이면 격리수용소에 보내지게 되고 가족들도 전염 여부가 밝혀질 때까지 각기 다른 곳에 격리된다. 환자는 대개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숨졌으며, 그 시체는 가족들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매장되었다. 시체는 시간이 흐를수록 마치 쓰레기처럼 큰 구덩이 속에 던져졌고 그 위에 또 다른 시체가 던져졌다. 또한 처음에는 남녀의 구덩이가 따로 만들어졌으나 그 구별마저 지켜지지 않다가 끝내는 화장으로 처리되었다.
한편 의사 뤼는 페스트의 고통에 빠진 환자들을 구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기독교적인 사랑을 시민들에게 베푼다. 또한 랑베르에게도 지극히 안간적인 충고를 하는가 하면 달아난 아내에게 미련을 갖고 있는 글랑에게 무한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 오랑의 호텔에 얼마 전부터 묵고 있던 타르는 뤼를 방문하여 격려하고 지원보건대를 조직한다. 그들은 악과 폭력을 앞에 두고 굳은 연대감으로 맞선다. 랑베르는 자신이 예기치 않게 이 죽음의 도시에 묶이게 되고 더구나 파리에는 아내가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이 도시를 탈출하려고 한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시의 관문을 지키고 있는 경비병을 매수해서 탈출할 날짜까지 받는다. 그러나 의사 뤼가 자신의 몸을 희생하며, 또 봉사대가 자발적으로 조직되고, 게다가 타르와 판느루 신부까지 참석하는 것을 보고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자신이 이곳을 떠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비록 애인에게 간다고 하여도 마음이 불편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장 8개월 동안이나 극성을 부리던 페스트도 점점 약화되기 시작했다. 페스트의 피해자가 드디어 줄기 시작하고, 혈청주사를 맞은 공무원과 한 처녀가 최초로 구원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뤼의 동지이자 헌신적인 봉사자 타르가 이 병의 최후의 희생자로 쓰러진다. 이어서 뤼는 휴양지에서 자신의 아내가 병사했다는 전보를 받게 된다. 페스트는 언제 그랬냐 듯이 물러간다. 오랑 시의 문이 크게 열리고 시민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의사 뤼는 이렇게 독백한다. "페스트 병균은 결코 죽지 않는다. 어딘가에 잠복해 있다가 행복한 도시에 불쑥 나타날지 모른다."
대표적인 실존주의적 작품
2차 대전을 전후해서 사르트르의 철학과 함께 세계적인 실존주의 선풍을 일으킨 이 작품은 2차대전시 경험했던 작가의 체험을 상징하고 있는 작품이다. 한 도시에 엄습한 재앙이 인간의 생존을 말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이별하게 만드는 파괴적인 모습은 전쟁과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50년대 한국 문학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전쟁의 인간살상과 타락한 인간성의 현실을 목도한 전후 한국사회의 작가들에게 큰 공감을 주었다. 여기서 '페스트'란 전쟁을 포함한 자유를 부정하는 모든 폭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폭력 앞에 대응하는 인간들의 양식은 다양하다. 달아나는 사람, 절망하는 사람, 정당화하는 사람 등등. 카뮈는 이들을 모두 이해한다. 취재차 오랑에 온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처음에는 무슨 수를 써서든지 오랑 시를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시민들의 고통과 구조대원들의 희생적인 연대감에 탈출의 기회를 스스로 반납한다. 그는 탈출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자살도 거부함으로써 카뮈의 철학적 반항을 실현하고 있다. 삶에 대한 애착, 인간에 대한 사랑, 이것을 뒤집어 보면 악에 대한 반항이다. 카뮈에게 악이란 전쟁독재감금억압질병빈곤 등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것들이다. 그의 글들은 낯선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개인의 소외, 악의 문제 등을 이야기함으로써 전후 지식인들의 소외의식과 환멸을 정확하게 반영했다. 2차대전 후 황폐해진 인간정신의 위기를 간파하고 이의 극복을 위해 카뮈가 제시한 <부조리>와 <반항>의 사상은 전후의 젊은이들에게 중세의 종교 이상으로 큰 힘을 발휘한 것이 사실이다. 그는 혼란하고 무질서한 정신적 풍토 위에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확립시킨 공로 이외에도 자신에의 성실과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로 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한 세대의 정신을 대표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뤼의 말처럼 "죽고 싶지 않은 인간이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부조리에 반항하는 인간의 모습은 영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완성 자전 소설 34년 만에 출간
1960년 1월 4일 파리 근교에서 가로수를 들이받은 자동차 안에서 47세의 카뮈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의 가방 속에 든 미완성 원고와 함께. 144쪽 분량의 초고는 구두점도 생략되고 속필로 써서 불완전한 상태였다. 사후 34년 만에 그의 딸이 정리해 <최초의 인간>(Lepremier Homme)으로 햇빛을 본 이 작품은 빈민지대에서 보냈던 그의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의 15년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최초의 인간>은 1994년 4월 15일 발간되어 1주일 만에 5만부가 팔리면서 파리 독서계를 흥분으로 몰아넣었다. 소설은 알제리에서 수레에 가재도구와 만삭의 아내를 싣고 황혼의 자갈길을 걸어가는 앙리 코르메리의 모습과 사내아이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된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카뮈의 가족이며 아이는 카뮈 자신이다. 이 작품 속에 기록된 그의 어린 시절은 본서의 생애에서 묘사한 것과 비슷하다. 파리의 비평가들은 "카뮈가 돌아왔다. 이 책에 카뮈의 모든 것이 있다. 감수성, 충실, 자비, 정직, 믿음, 절대에 대한 갈망, 꺼지지 않는 슬픔, 그리고 힘이 공존한다."고 평하고 있다. 이 유고는 그 존재가 확인되어왔으나 그의 유족들은 미완성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출간을 보류해 왔다. 유고 곳곳에서 보이는 "이름 바꾸는 것을 잊지 말라", "더 발전시킬 것"이란 메모는 이 작품이 자전적 소설임을 입증한다. 다행히 최근에 김화영 교수의 한국어 번역판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어 국내 독자들도 카뮈의 숨결을 한층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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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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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보이지 않는 머리핀
어떤 사람이 숙녀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머리핀을 발명하였다. 한 숙녀가 그것을 수퍼마켓에서 사게 되었다. 판매원이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머리핀의 상자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그 상자 속을 들여다보았지만, 머리핀이 보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 여자가 말했다.
"이 안에는 아무것도 없네요?" 그 남자가 말하였다. "당연하죠. 보이지 않는 핀인데 보일 리가 있겠어요?" 그래서 그 숙녀가 물었다. "정말요? 머리핀이 보이지 않는다구요?" "농담이 아니에요! 일주일 동안이나 이 물건이 품절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우리는 그것들을 팔고 있습니다. 그건 절대로 보이질 않거든요."
- 물건들이 보이는 것이 아닐 때, 그대는 계속 팔면서 계약할 수 있다. 상품들을 건네줄 필요조차 없다. 왜냐하면 애당초 그것들은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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